[작가의 탐식법] 그리운 몽골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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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 불볕을 넘어 불판이다. 지나친 무더위는 복잡한 머릿속마저 하얗게 녹여버린다. 근심과 번뇌도 잊게 하고 좋고 싫음의 분별도 흐리게 한다. 매사에 흥도 없고 성낼 일도 무덤덤하며 도전과 계획도 미루게 된다. 폭염에 얼이 쏙 빠져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이치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수행자가 아니니 계속 무심할 수 없다. 더위에 빼앗긴 입맛부터 되찾고 싶어진다. 원기 돋우는 음식을 떠올렸다. 삼계탕, 갈비찜, 생선구이…. 인기 블로거가 올린 맛집 사진도 검색해본다. 유명 셰프가 만든 퓨전요리 등이 눈길을 잡지만 도무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동네 빵집을 지나다가 무릎을 치고 말았다. 문득 떠오른 음식이 엉뚱하게도 만토우라는 하얀 몽골 빵이다. 향기도 빛깔도 없고 초이레 낮달처럼 이지러졌던 그 빵은 몽골 여행 내내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삶은 양배추처럼 둘둘 감긴 밀가루 빵 속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단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만토우와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다.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면 그저 심심하고 밍밍했다. 마유주처럼 달곰삼삼하거나 삶은 양고기같이 배착지근하지도 않았다. 마른 창호지를 씹는 것처럼 텁텁거려서 매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 좋아했다. 아이도 어른도 북북 찢어서 오징어 씹듯 하고 고추 간장에 적시거나 밑반찬을 곁들여 별식처럼 즐겼다.

몽골을 떠나던 날이었다. 길 안내를 해주던 유목 소녀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갑자기 몽골 요리 하나쯤은 배워 가고 싶었다. 저 밋밋한 만토우 쯤이야 밀가루를 적당히 뭉쳐 찌면 될 것 같았다. 나는 만토우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서툰 한국말로 "복잡해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게 다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만토우 레시피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반죽과 발효를 거듭하여 많은 공이 들어가는 몽골 토속음식이었다.

지난 주말 만토우를 잘 만든다는 중국 요릿집을 찾아갔다. 폭염을 쫓지는 못하겠지만 입맛은 되살려 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주문한 빵은 만토우보다 하얗고 쫀득했으며 더 부드러웠다. 하지만 내가 찾던 맛이 아니었다. 꽃빵이라고 멋 부린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매끄럽게 다듬은 모양도 낯설었으며 달큰하고 간간하게 간이 딱딱 맞는 것조차 못마땅했다. 무엇보다 초원의 바람을 담은 몽골 아낙의 손맛이 없었다. 무릇 흰 빵이라면 맛도 깨끗해야 하리.

느닷없이 몽골 빵이 그리운 까닭은 무엇인가. 어릴 때 밀쳐냈던 보리밥과 시금장과 오이지가 여름날만 되면 떠오르듯이, 그토록 싫어하던 것이 마음속에 떡하니 자리 잡을 때가 있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좋을 때도 있다.

폭염에 맹할 정도로 비워진 몸이다. 어찌 기름진 요리로 채울 것인가. 색색의 음식으로 입맛을 치장하겠는가. 때로는 맹물이 가장 맛있듯 무색무취의 민 맛이 뜨거움을 다독거려 줄지도 모를 일이다. jung-0324@hanmail.net

김정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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