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같이 독서토론리그] 양보 없는 설전… 최고의 토론 동아리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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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뢰성 있는 자료를 들고 와서 얘기하는데 왜 정확한 근거도 없이 예측성 발언만 합니까."

대명여고의 이 같은 공격으로 수세에 몰린 사대부고 학생들이 긴급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마이크 스위치를 잠시 끄고 소곤소곤 작전을 짜던 중 '띵동' 소리와 함께 4회전이 끝났다.

부산 고교 독서 토론 동아리 대상
인공지능·동물 실험 등 주제로 진행
참관자들 투표로 승리팀 결정
11월 말 '토론한마당'서 최종 결승

지난 20일 오전 10시 '2016학년도 고등학교 다같이 독서토론리그' 첫 경기가 열린 부산 동래구 동래고 소강당. '인공지능의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제로 대명여고와 사대부고 학생들 간에 토론이 한창이다. 학생들은 준비해 온 토론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거침없이 반박하며 긴장감 넘치는 토론을 이어갔다.

인공지능 개발 제한에 찬성하는 대명여고 학생들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우려가 크다는 논리를 부각하며 상대팀을 몰아붙였다.

"다보스포럼의 미래직업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개발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200만 개뿐입니다. 인공지능이 콜센터 안내원에서부터 단순 서비스직 일자리까지 침범할 것입니다. 인공지능 개발은 제한돼야 합니다."

구체적 수치를 들이민 대명여고 학생들의 '펀치'에도 사대부고 학생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역사에서 보듯이 기술 발전은 항상 새로운 일자리를 동반해 왔습니다. 인공지능 발전도 IT분야 등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계속해서 창출해 낼 것입니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대명여고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확한 수치나 신뢰성 있는 자료도 들고 오지 않고 그렇게 될 거라는 장밋빛 미래만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부산 동래구 동래고 소강당에서 지난 20일 열린 '2016학년도 고등학교 다같이 독서토론리그'에서 대명여고 한 학생이 '인공지능의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제에 대해 찬성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대명여고의 집요한 공격에 사대부고 학생들은 긴급 작전회의에 돌입하는 등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바로 평정심을 찾고 맞받아쳤다.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미래에 새롭게 나타날 노동시장이 아닌 현재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작성된 자료가 아닙니까.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미래에는 어떠한 노동시장이 형성될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날 토론은 결국 대명여고 학생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두 학교 학생들은 △인공지능 통제 △인공지능 소수 독점 등과 관련해 팽팽한 논쟁을 벌이며 참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2016학년도 고등학교 다같이 독서토론리그는 부산지역 고교 독서토론 동아리 간에 벌이는 토론 경진대회다. 지난해 부산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시도해 올해로 2회째를 맞았다.

각 동아리 학생들은 지난 5월 시교육청이 정한 지정도서를 읽고 3개의 토론 논제에 대해 토론을 준비했다. 올해 토론 논제는 △악법에 대해서는 불복종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연구 목적의 동물 실험을 금지해야 한다 등이다.

이날 리그 첫 경기가 열린 동래고에서는 금정고, 남산고, 대명여고, 동래고, 사대부고, 중앙여고 등 동래금정권 고교 6곳이 토론을 벌였다. 동래고와 남산고는 악법에 대해서는 불복종해야 한다는 논제로 토론실력을 선보였다. 학생들은 "시민 불복종은 정의로운 취지를 벗어나 폭력적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법 개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법체계 근간부터 잘못된 경우가 많아 악법에 대한 불복종에 찬성한다" 등의 의견을 쏟아내며 토론장의 분위기를 달궜다.

인간을 위한 연구 목적의 동물 실험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제로 토론한 금정고와 중앙여고 학생들도 동물 실험의 신뢰성, 부작용, 윤리성 등에 대해 양보 없는 논쟁을 벌였다. 이날 승리 팀은 대명여고를 비롯해 동래고, 금정고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동래고에 아쉽게 패했던 남산고 학생들은 "정의에 대한 관점이 서로 어긋나 토론이 꼬인 부분도 있지만 상대방이 잘했고 우리도 준비한 대로 팽팽하게 맞섰다"고 말했다.

토론 승리 팀은 참관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참관자들은 토론 전 나눠 준 평가지를 통해 우수 토론자도 선정하며 우수 토론자가 속한 팀은 3점의 가산점을 받는다.

올해는 서부사하권, 북강서권, 동진구권, 남부권, 동래금정권, 해운대권 등 6개 권역에 속한 고교별로 예선이 진행된다. 가장 많은 승점을 쌓은 권역별 고교 2곳이 예선을 통과해 오는 11월 말 토론 축제의 장인 '토론한마당'에서 최종 실력을 겨룬다.

시교육청 김혁규 중등교육과장은 "이 대회로 교내외 토론 문화가 확산되고 학생들의 소통, 협력, 창의적 사고, 문제 해결력 등이 길러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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