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만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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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풍미했던 왕조 숭배는 식사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권력자들의 만찬>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 시대 전제군주들은 일 년에 몇 차례 식사 장면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의식을 벌였다. 의식의 참가자들은 줄을 지어 입장했고, 식탁 위의 나이프는 십자가 형태로 정렬했으며,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덮개를 여는 동안 손 씻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참석한 가장 높은 성직자가 축도를 한 후에 왕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높은 단 위에서 혼자 식사를 했다. 스페인 왕 필립 2세의 식사 공개 의식에서는 귀족 집사장이 왕의 행렬을 이끌었는데,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의 특권은 왕에게 냅킨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왕의 식사 공개 의식은 먹는 일이 생존을 위한 영양소를 흡수하거나 감각적 쾌락을 느끼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평민들은 본 적도 없는 진귀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과,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엄격하게 준수되는 까다로운 예법은 군주와 평민의 사회적 거리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군주는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며 절대불변의 권력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음식, 결속·분리의 상징이자 방편
논란의 청와대 만찬은 어느 쪽?
심신의 균형, 세계와의 조화 필요

예로부터 음식은 '결속' 혹은 '분리'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서양에서 친구라는 말이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을 의미했던 것처럼, 우리말 식구도 한집안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연애, 사업, 정치 등에서 처음 만난 상대와의 결속을 위해서도 사람들은 흔히 식사를 대접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사람들은 서로 긴밀해진다. 그래서 각종 음식점은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한편 음식은 계급, 성별, 인종 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분리의 상징으로도 이용된다. 중국에서는 오랑캐를 '날것을 먹는 마귀'라고 불렀다. 독실한 힌두교도는 자기가 속한 카스트 외에 다른 카스트의 음식은 먹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는 그릇조차 손대지 않으려고 극도로 주의한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스트의 사람과 같은 병으로 마셔야 할 상황에 처하면 병을 높이 들어 입에 닿지 않게 마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우리네 여성들은 함께 사는 가족이라도 남성과는 겸상을 하지 못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리를 상징했던 절대왕정의 공개 식사는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결속을 위한 만찬으로 변모했다. 1789년 7월 바스티유 습격이 있은 지 며칠 뒤 샤를 드 빌레트 후작은 박애라는 혁명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거리에서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계급을 떠나 모두가 한데 섞여…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수도가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 되어, 100만 명이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준비한 만찬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송로버섯, 샥스핀, 캐비어 등 최고급 재료가 동원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호화스러운 만찬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대해 송로버섯은 양념으로 조금 쓴 것이며 가격을 계산하면 500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명이 나왔다. 쟁점이 송로버섯의 가격으로 번졌지만, 만찬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것이 음식 재료의 가격은 아닐 것이다. 가격을 떠나 그 만찬이 국민을 결속하는 데 기여했는지, 아니면 국민을 분리시키고 소수만을 결속했는지 따져보면 판단은 분명해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퓌에슈는 <먹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먹으려면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모두 균형 잡혀 있어야 하고, 외부 세계와도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은 자칫하면 어긋나기 쉽다." 제대로 먹기가 쉽지는 않지만, 제대로 먹으려 애써야 한다. 함께 먹는 만찬은 더욱 그렇다. 안 그러면 욕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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