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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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고 떫은데 향긋하며 쌉쌀하고도 달콤한 그것. 멍게 맛은 이처럼 오묘하다. 게다가 그 향은 오랫동안 입안에 남아 수시로 고개를 내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니 더욱 신비롭다. '우멍거지'를 어원으로 한다는 멍게. 포경(包莖)의 순우리말인 이 단어를 대하기가 민망도 하나 자연을 그대로 담은 선조의 마음은 정겹다.

그렇다고 누구나 이 맛을 느끼는 건 아닌 듯하다. 표면이 울퉁불퉁해 보기에도 징그럽다며 멍게 자체를 피하는 이도 있으니. 시인 정지용도 이 축에 속하지 않았나 싶다. 광복 이후 부산을 찾은 적이 있는 그는 '부산(釜山) 2'란 산문을 남긴다.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한 점 이외에 도리가 없다. 청계는 열다섯 개를 먹는다. '답니더, 이거 참 답니더.' 비리고 떫은 것이 달다면 정말 단 것을 비리다고 할 사람 아닌가! 향기는커녕 나는 종일 속이 아니꼽다."

말씨로 볼 때 부산 출신인 듯한 동행인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멍게를 흡입하다시피 한 모양이다. 이를 지켜보며 속이 메슥거려 인상을 찌푸린 정지용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충북 옥천 출신인 그가 비리면서도 달콤한 해산물 맛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던가 보다.

멍게의 독특한 맛은 양식 이후 그 신비로움이 떨어지기도 했다. 멍게 외피의 두툼함은 인간의 보살핌 속에서 나약해진 듯하다. 양식으로 사람 손을 타면서 사람의 손힘으로도 째질 만큼 껍질이 약해져 버렸으니 이를 어찌하랴. 이렇듯 얇아진 껍질 탓에 달콤한 바다 향도 그 틈새로 새어 나갔는가. 쓴맛에 옛 바닷가 멍게 맛을 그립게 만드니 하는 말이다.

양식 해산물이 자연산보다 질이 떨어지는 건 멍게만이 아니니 이를 고려해 즐길 일이다. 멍게는 해삼, 해파리와 함께 3대 저칼로리 해산물로 여겨진다. 바다의 파인애플로 불리는 멍게는 그 맛도 지금이 절정이어서 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줘 왔다.

이런 여름 별미 멍게가 요즘 된더위 탓에 절반가량이 폐사돼 어민에게 시름을 안겨 주고 있다. 고수온에 취약한 멍게가 제대로 먹이를 섭취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다니 유례없는 무더위를 실감케 한다. 앞으로 멍게 값마저 폭등하면, 이제 소주는 누구와 외로움을 달래나. 시인 이동순은 이리 노래했다. "소주와 멍게는 서로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춘다"고.

이준영 논설위원 g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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