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창의 고전 다시 읽기] 34.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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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허무 돌파하는 '우정'의 시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실제 모델인 그레고리오 푸엔테스. 소설에선 헤밍웨이의 만물을 향한 우정의 눈길을 느낄 수 있다. 부산일보DB

이번 여름에도 나는 푸르게 넘실대는 해운대 바다를 저버렸다. 세계 최대 원전밀집단지인 고리, 그 지척의 바다에서 헤헤거리며 퐁당거리고 싶진 않아서다. 그 대신에 쿠바 멕시코 만으로 떠났다. 지난 며칠간 그 바다 위, 작은 조각배에 타고 있는 야성의 노인과 더불어 지냈다. 독서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년)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깊고 푸른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와 엎치락뒤치락 목숨 걸고 벌이는 투쟁의 이야기다.

낚시의 달인인 노인은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를 졸졸 따르는 소년이 출어 직전에 음식을 얻어 노인에게 가져다준다. "할아버지가 밥도 안 드시고 낚시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해요." 아이라기보다는 엄마의 마음이다. 소년의 아빠가 운이 없는 노인과 다니지 말라고 해 따라가진 못하지만, 소년과 노인은 가족관계 저 너머에서 우정으로 맺어져 있다. 어부 대 어부다. 서로 알아준다. 그래서 더 신난다. 노인은 조각배에 몸을 싣고 홀로 바다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나간다.

고독 뒤로 빛나는 연대감
노인도 바다도 소년도
'같은 뿌리… 만물은 하나'

바다를 이윤의 대상 아닌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선구적 생태주의 깃들어


마침내 낚시에 걸려든 거대한 청새치. 아슬아슬한 사투의 연속. 팽팽한 낚싯줄을 통해 삶의 고투와 그 퍼덕거림이 전해진다. 그런 와중에도 노인은 소년을 계속 생각한다.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고독한 현장 뒤로 연대의 아우라가 빛난다. 소년과 노인은 그런 식으로 이어져 있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노인은 지친 청새치를 조각배 옆에 매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상어 떼가 그의 행운을 그냥 두지 않는다. 상어 떼와 다시 사투를 벌이지만, 항구에 닿았을 때 고기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인생이란 이윤이 남지 않으면 도로(徒勞)에 불과한 것인가. 소년과의 연대감이 삶의 허무를 돌파한다. 헤밍웨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당할 순 있어도 패배할 순 없어." 노인은 이렇게 되뇐다.

바다는 자상하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사납다. 노인은 그 바다를 여성 명사로 부른다. 돈에 모든 것을 건 다른 어부들은 바다를 남성 명사로 부르며, 바다를 적대자, 경쟁자로 본다. 다른 어부들에게 바다는 이윤을 취하는 식민지일 뿐이지만 노인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한 열렬한 공화주의자였지만, 이처럼 선구적 생태주의자이기도 했다. 생태주의의 정치적 버전이 곧 공화주의 아니겠는가.

노인의 우정은 만물을 향한다. 청새치를 성자에 빗대기도 한다. "눈은 잠망경의 반사경처럼, 행렬 속에서 걸어가는 성자의 눈처럼 초연했다." 날치도 그의 친구다. 연약한 제비갈매기도 인간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산다. 자연 속에서 식물과 동물은 서로 먹고 먹힌다. 해월 최시형의 말처럼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청새치를 끌고 가면서 노인은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형제처럼 항해하고 있지 않은가."

당시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는 '노인과 바다'를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세계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다룬 작품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시선은 만물동근(萬物同根)의 더 거대한 세계를 투시하고 있다.

노인은 사자 꿈을 자주 꾼다. 사자들은 황혼 속에서 마치 고양이 새끼처럼 뛰놀았고, 그는 소년을 사랑하듯 이 사자들을 사랑했다. 자연 속에서는 아이도 고양이도 사자도 하나다.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작가는 그 점을 곧장 말하고 있다. "노인은 모든 게 늙어보였으나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두 눈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이었고 쾌활한 불패(不敗)의 기색이 감돌았다." 노인과 바다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는 출렁거리다 끝내는 허물어질 것이다. 만물은 하나다.

바다에서 돌아온 노인은 소년을 보자마자 거침없이 말한다. "네가 보고 싶었다." 그러고는 언덕 위 오두막에서 두 팔 쭉 뻗고 손바닥을 위로 펼친 채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잠들어버린다. 두 팔 활짝 벌려 모든 걸 받아들인다.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 한 줄 한 줄 음미하듯 읽다 보면 어느새 노인과 소년의 우정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jhc55@deu.ac.kr



장희창

동의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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