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65> 고성 갈모봉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땀으로 범벅된 불볕 산행, 편백숲이 괜찮다 손짓하네

갈모봉 아래 전망 바위에 서면 고성읍내와 거류산 벽방산 조망이 시원하다. 당일은 시야가 흐려 먼 산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발아래 산줄기와 고성 읍내는 잘 보였다.

경남 고성 갈모봉산(368.3m)은 낮고 아담하지만, 조망이 빼어난 산이다. 특히 이 시기 갈모봉산이 사랑받는 이유는 편백과 삼나무 수만 그루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시며 산림욕과 피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그렇다. 불볕더위가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여름의 끝자락을 염원하며 숲을 찾았다. 한껏 땀을 흘린 뒤에 맞이한 편백 숲에서의 휴식은 환상이었다.

■바다를 뒤에 두고 오르다

차량 바깥 온도가 무려 38도를 찍는다. 바람마저도 뜨거운 날이다. 경남 고성군 삼산면 영선고개에서 기어코 산행을 시작한다. 갈모봉으로 오르는 길은 이정표나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38도 폭염에 바람마저 뜨거워
더운 열기로 정상 시야도 흐릿
하산 길 만난 수만 그루 편백
눕거나 앉아 피서 즐기는 행복



영선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갈모봉으로 줄곧 이어지는 능선을 따른다. 성지산~270봉~전망 바위~288봉~223봉~342봉~갈모봉산~전망 바위~여우바위봉~사거리 갈림길~편백숲~식수대~관리사무소~우실 버스정류장까지 8.4㎞를 5시간 걸려 걸었다.

영선고개는 장지삼거리라고도 불린다. 해안 쪽 도로로 내려가면 군령포가 있다. 군령포의 건너편은 올해 봄에 소개했던 통영 봉화산. 사량도행 여객선이 다니는 가오치항이 그곳 해안에 있다.

갈모봉산 산행을 시작하는 곳에 대형 안내판이 잘 서 있다. 계단을 오르면 이내 '쇠스랑 장군'의 유허비가 나온다. 쇠스랑 장군 이덕상 공은 임진왜란 때 군령포에 상륙한 왜군을 퇴비를 뒤집는 쇠스랑으로 물리친 뒤 농군을 이끌고 이순신 장군의 진영에 합류했다고 한다. 농기구로 왜적 정예군을 무찔렀으니 힘이 장사였을 것이다.

성지산으로 오르는 오르막은 가파르지는 않으나 뜨거운 대지가 뿜어내는 열기가 만만찮았다. 바람도 없었다. 실낱같은 바람 한줄기가 불어오면 너무 달콤하고 고마웠다.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갈모봉 산림욕장이 시작되는 곳의 편백숲
막상 특별한 표석이 없는 성지산에 올라서니 길은 평탄했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풀이 등산로를 감출 기세였다. 풀숲 속에서 보라색 맥문동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하얀 취꽃도 벌써 피어 가을을 예고하고 있다.

270봉을 지나자 전망 바위가 나온다. 산 아래 병산리 긴 골짜기가 속속들이 보인다. 벽방산도 희미하다. 대지의 열기 때문인지 주변이 온통 수증기에 휩싸인 솥 안 마냥 뿌옇다. 어느새 가지고 온 물을 절반이나 먹었다.

■조망 빼어난 여우바위봉

졸참나무 도토리가 제법 튼실하게 여물고 있다. 이 더위도 결국 가을에 무릎 꿇고 말리라. 223봉으로 고도를 낮춘다. 긴수염고래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바다를 향해 금방이라도 입을 크게 벌리고 뛰어들 것 같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이는 산길에 원추리가 노랗게 피었다. 갈모봉 정상은 이정표를 겸한 정상 나무 기둥이 우뚝 서 있다. 평소에는 바다 조망이 좋았을 것이지만, 온통 더운 열기가 올라와 시야가 흐리다. 자란만이 어렴풋이 보인다.

정상의 소나무 한 그루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점심을 먹고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선다. 고성 읍내가 잘 보이는 바위 조망터로 가는 길이다.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지만, 시원한 조망은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준다.

정상에 오른 뒤 소나무와 이별하고 여우바위봉으로 향한다. 안부에 '산책로' 이정표가 있다. 직감적으로 여우바위봉을 우회하는 길임을 알아챈다. 내심 우회로로 가고 싶었으나 온몸이 땀에 젖은 황계복 산행대장은 뒤도 안 돌아보고 여우바위봉으로 오른다.
거대한 돌탑
결과는 무척 좋았다. 정상보다 여우바위봉 조망이 더 빼어났다. 더욱 좋았던 것은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주어서다. 고성 자란만은 섬들을 품고 있었다. 자란만은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유명한 상족암을 품고 있고, 갯장어(하모)가 많이 잡히는 천혜의 어장이다. 아쉽게도 사량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여우바위봉에서 갈모봉 산림욕장으로 내려선다. 사거리 이정표가 나왔다. 작은 봉우리가 있어 애써 로프를 잡고 올랐다. 그러나 이내 내려서야 했다. 뭔가 허전했다. 봉우리를 오르면서 갈모봉 명소인 석문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산림욕장에서 맛본 여유

때론 '정상추구형'이 바른 판단만은 아닌 모양이다. 우회로로 짐작되는 아랫길로 갔으면 석문을 기분 좋게 통과할 것을 그저 오르는 길을 마다치 않고 정면 승부를 하다 보니 석문을 놓쳐버린 것이다.

산행대장이 돌아가서 보고 가자고 제안했지만,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도무지 동의해주지 않았다. 석문은 가던 길을 돌아서면 50m 거리에 있다고 한다.

예전에 헬기장으로 사용한 듯한 넓은 개활지가 나오더니 편백숲이 시작된다. 줄을 잘 맞춰 심은 편백이 정연하다.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다. 편백숲으로 다가가니 숲속에도 사람들이 꽤 있다. 마련된 평상마다 삼삼오오 눕거나 앉아 낮잠을 즐기거나 고스톱을 치며 피서를 하고 있다.

분명 식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자에 앉은 중년 부부에게 물으니 바로 아래 먹는 물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리를 내준다. 수통에 결로가 생길 정도로 시원한 물을 연거푸 마신다. 배가 불러 더는 물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마셨다.

정자에서 자리를 내준 부부는 인근 통영에서 왔다고 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일찍 이곳에 왔노라고 했다. 갈모봉 산림욕장은 최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더 인기가 높아 많은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찾는다고 했다. 이 더위에 에어컨 없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긴수염고래를 닮은 바위.
생각 같아선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흠뻑 젖은 몸을 식혀줄 목욕탕을 먼저 찾아야 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까지는 덱 길이 잘 조성돼 있고, 편백과 삼나무 숲길이 좋아 기분 좋게 하산할 수 있었다. 산림욕장에서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까지는 10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고성 갈모봉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고성 갈모봉산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길] <565> 고성 갈모봉산 길잡이
[산&길] <565> 고성 갈모봉산 산행지도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