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십리대숲] 바람이 물으면 댓잎이 몸 떨며 답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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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울산 십리대숲의 대나무들. 바깥은 불볕더위라도 십리대숲 안은 언제나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울산의 십리대숲. 올 여름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지로 선택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쉬어 갈 정도라면 분명 사람의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무엇이 있을 테다.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가 보여준 대숲의 명 장면들

뽀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청록의 대나무 숲 위로 흰옷의 남녀가 춤추는 한 쌍의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떨어질 듯 날아갈 듯 둘은 때로는 검을 부딪고 때로는 눈빛을 주고받는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저우룬파와 장쯔이가 보여준 이 장면을 어떤 이는 남녀 교접의 은유로 해석키도 했다. 여하튼 적이던 두 남녀는 서로를 좇아 대나무 사이를 오가며 종내는 서로를 공감하게 된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대나무가 사람의 마음까지 소리 없이 흔들었던 것이다.

폭염에도 빽빽한 숲 덕분 '서늘'
음이온 배출로 심신 안정도
곳곳 벤치·죽림욕장 마련
가족·연인과 소풍 장소로 제격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밀려 댓잎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낸다. 자연 속에 묻혀 있는 소리를 찾아 다니는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프로듀서 은수(이영애)는 바람 소리, 댓잎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각자 마음에 있는 상처를 녹여 낸다. 서로를 보며 둘은 마음을 섞고 마침내 합일에 이르게 된다.

■시민의 힘으로 살려낸 10리의 대숲

무려 10리다. 이만한 규모의 대숲은 우리나라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들다. 십리대숲을 떠안고 있는 것은 태화강이다. 태화강은 울산의 중심을 가르는 강. 중간 쯤에 태화교와 삼호교가 있다. 그 사이 태화강변에 길이 4.3㎞, 폭 20~30m의 대숲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이 곳에 홍수가 잦았다. 농경지 피해가 많아 지자 주민들이 홍수 방지용으로 대나무를 심었다. 그게 오늘날 십리에 이르는 대밭으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1749년 울산읍지인 학성지에 '오산 만회정(현재 태화강대공원 내 위치) 주위에 큰 대밭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꽤 오래전에 대숲이 형성돼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십리대숲은 한때 홍수 등 물의 흐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또 한때는 주거지로 대거 개발될 위기에도 처했다. 울산시민들이 나서 대숲 살리기 범시민 운동을 벌여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민의 힘으로 보존된 것이라 가치가 더욱 중하다 하겠다.

■바람이 묻고 댓잎들이 답한다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도대체 이곳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몇 그루나 될까, 그런 쓰잘 데 없는 의문을 갖게도 되지만, 여하튼 십리대숲은 바람이 묻고 대나무가 답하는 곳이다.

바깥은 폭염의 기세가 등등한데도 대숲 안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는 워낙에 대나무가 빽빽이 자라 햇볕이 잘 스며들기도 어렵기도 하거니와, 대나무들이 음이온을 풍부하게 배출해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또 한 이유다. 옛 선비들이 죽림에 묻혀 세월을 조롱했다는 얘기는 전혀 황당한 얘기만은 아닌 셈이다.

빽빽한 대숲 속에 사잇길을 고불고불 정감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 때문에 10m 앞도 대나무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하늘 쪽으로는 댓잎들로 대부분 가려져 꼭 필요한 만큼만 햇빛을 받아들인다. 대숲을 거닐다 위를 쳐다보면 바람에 댓잎이 흔들리는지 하늘이 흔들리는지 헛갈리게 된다.

곳곳에 벤치를 놓아 가는 걸음 지친다 싶으면 언제든 쉴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 대숲 중간 중간에 죽림욕장을 마련, 평상을 놓아 뒀다. 혼자 사색하며 걸어도 좋고, 친구나 연인과 속삭이며 걸어도 좋다.

어느 순간 바람이 사라락 부드럽게 스친다. 대나무에 묻는 것이다. "나의 손길을 어쩔 것이냐고." 댓잎들은 그 애무에 답하듯 '쏴아아' 소리를 내며 몸을 떤다. 그 떨림에 수명이 끝난 갈색 댓잎들이 팔랑이며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도 함께 엑스터시를 느낀다. 저우룬파와 장쯔이의 공감, 유지태와 이영애의 합일을 굳이 대숲을 배경으로 그려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테다.

■차 한 잔 마시며 대숲 감상하는 여유

십리대숲 전체를 조망하려면 강 건너편에 있는 태화강 전망대로 가서 보는 게 좋다. 대숲의 중간 쯤에 태화강을 건너던 옛 나루를 재현했다며 작은 선착장을 만들어 놓았다. 1000원을 내면 작은 보트를 타고 전망대로 건너가게끔 해놨다는데, 이용객이 없는지 제대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눈앞에 두고도 멀리 돌아가는 게 억울하기는 하지만 전망대를 이용하려면 자동차를 타고 십리대숲 옆 태화교를 건너 강변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게 편하다.

전망대는 4층 규모인데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십리대숲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3층에는 360도 돌아가는 회전카페가 있어, 차 한 잔 마시며 태화강 전체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십리대숲은 태화강대공원에 포함돼 있다. 태화강대공원은 서울 여의도공원의 2.3배 크기로, 대숲을 비롯해 자연의 생태환경을 사람의 힘을 보태 효과적으로 보존해 놓았다. 250m 길이의 덩굴식물터널, 1만 700㎡ 부지에 한국, 중국, 일본 원산의 대나무 63종이 심어진 대나무생태원은 여름철의 볼거리다. 봄에는 꽃양귀비를 비롯해 수천만 송이의 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십리대숲은 울산시 중구 태화동에 있다. 내비게이션에 '십리대숲', '십리대밭', '태화강대공원' 등을 입력하면 된다. 도로변 주차장에다 최근엔 대규모 공영주차장까지 새로 지어 놓아 주차는 크게 무리가 없는 형편이다.

대중교통으로는 태화강역, KTX울산역, 울산고속버스터미널,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화강대공원 인근 태화동정류장까지 버스가 수시로 있다. 40~50분 정도 소요. 정류장에서 걸어서 10여 분이면 도착한다.

태화강대공원 인근엔 음식점들이 많지만 대숲을 포함해 공원 안에는 먹고 마실 휴게시설이 따로 없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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