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 '돌산마을' 석면 쇼크] "철거반 지붕 부순 날에는 석면 가루 덮고 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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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문현동 슬레이트 주택 밀집지역인 돌산마을. 슬레이트 지붕 분해·결합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석면 피해자가 됐지만 여전히 200가구가 넘는 슬레이트 주택이 남아 있다. 김병집 기자 bjk@

4일 오후 부산 남구 문현동의 전포돌산공원에서 만난 김순옥(62·여) 씨는 이야기 도중 연방 기침과 가래를 내뱉었다. 김 씨가 기침, 가래에 시달린 건 15년 전부터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니 하며 기침약만 타 먹었다고 한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된 병명 하나 듣지 못했다. 김 씨는 최근에야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았다. 석면폐증 3급 판정을 받은 것이다.

돌이 많은 황령산 비탈에 위치해 '돌산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현1동 돌산길 인근은 80년대 초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됐다. 현재 남은 500명의 주민은 대부분 30년씩 돌산마을에서 거주한 이들이다.

80년대 초 생긴 무허가촌
주민 500명 30년씩 거주
264가구 중 207가구
여전히 슬레이트 지붕

석면폐증 3급 판정 60대
"영문 모르고 15년간 기침
함께 마신 자식들 어쩌죠"


1988년 이곳에 정착한 최명화(68·여) 씨는 지난해 석면폐증 3급 판정을 받았다. 최 씨의 남편 이길륭(77) 씨는 석면폐증 2급 환자로 지난해 10월부터 입원하고 있다. 이들은 부산에서 처음 기록된 부부 석면 피해자다.

최 씨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심할 때는 이틀에 한 번씩 구청 철거반이 와서 슬레이트 지붕을 망치나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 등으로 부수고 갔다"며 "집 안팎이 슬레이트 지붕에서 나온 가루로 범벅이 됐지만, 부서진 지붕을 다시 끼워 맞춰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기에 석면 가루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석면폐증 3급을 받은 박복관(71·여) 씨가 말을 이었다. 과거 3번의 강제 철거를 경험한 박 씨는 "여자와 아이들은 집안에 숨어있느라, 남자들은 밖에서 철거를 뜯어말리느라 석면 가루를 그대로 마셨다"며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나면 부서진 지붕에서 떨어진 석면 가루가 이불 위에 수북이 쌓였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노후 된 슬레이트 지붕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여전히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었다. 남구청에 따르면 돌산마을 264가구 중 207가구가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을 쓰고 있다. 주민들은 지자체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환경부와 부산시는 최대 336만 원까지 슬레이트 지붕 철거 비용을 지원해주는 '슬레이트 철거 처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지붕을 올리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전액 주민 부담이라 실효성이 낮은 실정이다.

석면 피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부족하다. 대표적인 석면 질환인 석면폐증은 1~3급으로 구분되는데, 정부가 지급하는 요양생활수당은 1급이 5년, 2급과 3급은 2년 동안만 지급된다. 추가로 지원받으려면 질환이 심해져 2, 3급이 1급이나 폐암, 중피종암 등으로 악화돼야 한다.

'부산 석면피해자와 가족 협회' 박영구 회장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 더 아파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치료제가 없어 피해자들은 평생 석면 질환을 안고 살아야 하는데 정부의 지원은 무책임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던 주민들은 하나같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자식 얘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여기 남아 있는 우리야 살날이 얼마나 남았겠습니까. 하지만 석면 가루를 함께 들이마신 우리 아들, 딸들은 앞으로 어떡하나요. 석면은 폐 속에서 없어지지 않고 증상이 없어도 갑자기 큰 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던데…."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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