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구조조정 위기의 숨겨진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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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대항해 시대가 오면서 경제는 자급에서 교환구조로 바뀐다.

해운·조선 부문 구조조정 문제로 우리 사회가 갈등의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명쾌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당장 채권단의 화급한 요구에만 이끌려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와 정부의 자금지원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해고장을 날리는 기업, 국민 세금으로 특정 기업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부에 대해 노동자와 일반 국민들은 불신의 벽을 더욱 높이게 됐다. 무엇보다 사태의 원인을 분명히 밝히고 그 원인에 걸맞은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조정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를 한번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문제의 본질은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에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생산능력에 비해 소비가 부족한 데에 있다. 즉 배에 실을 화물과 선박 주문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불일치가 왜 발생한 것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무역량이 감소하면서 무역을 사업으로 삼는 해운업과 그 수단인 선박의 수요가 모두 감소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깊이 들어가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자본주의라는 경제제도의 본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비 부진이 야기한 구조조정
자본주의 체제선 필연적 과정

노조는 10년 전 위기 경고했는데
왜 노동자와 가족들만 책임지나


자본주의는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교환이 양자를 연결시키는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경제이다. 교환경제 혹은 상품경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직접 일치하는 구조로 자급경제라고 부른다. 이들 두 경제의 구조적 차이는 그 목표가 서로 다른 데서 비롯된다. 자급경제의 목표는 소비에 있다.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교환경제는 먹고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이런 목표는 교환을 통해 달성된다. 왜냐하면 돈을 번다는 것은 구매한 것과 판매한 것의 차이를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교환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교환의 두 요소에서 구매는 소비이고 판매는 생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판매하는 사람은 생산자이고 구매하는 사람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판매는 공급을, 구매는 수요를 이룬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구매한 것보다 판매한 것이 커야 하고 이 둘의 차이를 우리는 수익이라고 부른다. 돈을 최대한 벌기 위해서는 이 둘의 격차를 최대한 벌려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이윤극대화라고 부르는 자본주의의 원리이다. 그런데 아뿔싸, 구매는 수요이고 판매는 공급이다. 공급과 수요는 당연히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그 격차를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구조조정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오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당연히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 산업에서는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10여 년 전 이런 구조조정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이미 공급-수요 불일치가 쌓여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구조조정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닥쳐올 위기에 눈을 감고 당장 코앞의 이익만 좇아 공급을 줄이기는커녕 계속 늘리기만 한 기업과, 이를 알고도 미리 감독하지 않은 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 노동자와 국민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지금의 행태에 누가 쉽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sjkang@dau.ac.kr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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