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1. 영도 해돋이 마을 풍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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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당산나무 그늘 같은 휴식처

'해돋이 마을 풍경나무'는 주민들의 느긋한 삶을 정겨운 당산나무같이 보듬고 있다.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제공

많은 예술 행위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의 삶을 구성하며 의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공간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공간 역시 자본 논리가 지배하면서 공간의 사용 가치보다는 교환 가치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때 바람직한 건축 문화를 확산하고 젊은 건축가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최근 완공된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부정기 시리즈를 마련했다.

한국전쟁 피란민 정착지에
주민공모사업 통해 건립

건물 하부 필로티 적용
다양한 공간 활용 가능

전후좌우 조형미 뛰어나
해외 유명 건축 웹진 소개도

바다 안개인가 했더니 이내 몰려오는 구름, 자연의 존재자들이 부채꼴처럼 퍼져 서로 말을 거는 듯한 부산 영도 봉래산 가장 높은 곳의 해돋이 마을. 영도구청에서 봉래산 방향으로 10여 분간 강파른 경사지를 오르니 마침내 '해돋이 마을 풍경나무'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는 듯 적정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곳이다. 순한 풍경 속에 순한 바둑이의 졸리운 꼬리질이 발걸음을 사그랑사그랑 가볍게 한다.

해돋이 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이송된 사람과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한 후 '잘 살아보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이름이 지어졌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주민들의 결속력이 주민공모사업을 통한 예산 지원으로 이어져 해돋이 마을 전망대는 결국 세상에 나왔다.

전망대를 설계한 유상훈(애드아키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기능성을 넘어서서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자긍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축이 필요했습니다. 예전 당산나무가 마을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휴식 장소로 이용되어 왔듯이, 나뭇가지들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성한 휴식의 이미지를 차용해 전망대를 계획했습니다"라고 말한다. "화려한 오브제 건축이 아닌 마을 집들이 가지고 있는 매스, 재료, 표정 같은 다양한 고려를 통해 서로 닮아가면서 마을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건축을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처음 계획은 확보된 작은 부지에 소규모 전망덱, 휴게소 및 매점 건립이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주민들과의 의논 과정에서 국수, 음료, 인근 천연염색 공방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과 마을 창작물 갤러리같이 복합기능이 가능한 매점도 만들었다.

마을 주민 일부가 직접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지 고저차를 활용한 필로티를 만들어서 공간을 비워 다양한 공간 활용이 가능하게 했다. 또 희망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색깔도 흰색으로 칠했다. 

내부 모습.
유 건축가는 동삼 희망마을 커뮤니티, 보수동 서민 생활 개선사업 마스터플랜, 산복도로 르네상스 천마산로 일대 마스터플랜 수립용역 설계를 통해 끊임없이 지역커뮤니티와 지역성에 천착해왔다.

해돋이 마을 전망대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공동체(community) 개념을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그를 '소통의 건축가'라 부를 만하다.

빠듯한 예산에 작은 평수의 대지이지만 조형성도 훌륭하다. 대개의 건축물이 전면 조형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해돋이 마을 전망대는 전면, 후면, 측면 가릴 것 없이 어느 각도에서도 다양한 풍경이 생성된다. 해외 유명 건축 웹진 아키델리에도 소개됐다. 그의 일련의 작업은 소유에 매달리는 '장소'의 비중을 서서히 감소시키고 '관계와 경험'의 가치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해돋이 마을 전망대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지만, 첫인상은 뭔가 외로워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내면의 체력을 키우며 허기도 참는 '외로운 상태'야말로 희망의 반전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지는 석양에 몸을 돌리면 그 석양이 바로 떠오르는 태양이듯이, 좌절 속에 또다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번잡하지 않은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박태성 선임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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