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만 세금 낸다고? 세금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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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전쟁/하노 벡· 알로이스 프린츠

조세형평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일까. 서민들은 '유리지갑'을 털려 납세의 의무를 다하는 반면 '가진 자들'은 조세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탈세를 꾀하기 일쑤다. 사진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김정주 넥슨 창업주를 조세포탈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부산일보DB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다."

2013년 8월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법 개정안 취지를 설명하면서 한 얘기다.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급격히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늘리지 않기 위해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됐다.

걷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오랜 갈등과 대립 쉽게 설명

정치인들 '감세 공약' 남발
서민들에게 되레 부담 가중
조세체계 불합리성 지적


그러나 당사자의 의도와 달리 이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아무리 비유적 표현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참모가 국민을 거위에 비유한 것을 두고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정부가 대기업과 슈퍼리치 등 '가진 자'에 대한 과세 강화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해 온 터라 노동계 등 서민층의 반발이 거셌다.

'거위 깃털' 발언은 지배세력의 세금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절대왕정시대건 21세기 민주공화국 체제건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 이후로 끊임없이 세금을 매겨왔던 만큼 '걷으려는 자'의 입장은 한결같았다는 얘기다. 인생에서 오직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금전쟁>은 국가가 수입(세금)을 목적으로 정치와 경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왜 세금을 내는가'에서 출발해 '도대체 어떤 세금을 내고 있는가', '세금은 과연 공평한가' 등의 질문을 던진 뒤 조세체계의 불합리성과 그에 담긴 계급성을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독일의 저명한 대학 교수(경제학)인 저자들은 독일 사례를 들어 세법이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주요 원인으로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해 각종 '감세(減稅) 공약'을 남발해 온 탓"을 꼽는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권에서 법인세율을 인하해 대기업 등에 혜택을 줌으로써 '부자 감세' 논란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들은 각종 비과세 혜택과 예외 규정 등이 뒤엉켜 '누더기'가 된 세법에 담긴 '정치적 기제'를 알기 쉽게 풀어낸다. 정치인들의 셈법은 이렇다. 일단 개별 이해당사자들을 겨냥해 예외적인 세금 감면 조항을 만들고, 그 대가로 선거에서 표를 얻는다. 그러다가 재정 상태가 불안해지면 다시 세율을 높인다. 이왕 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걷어서 그들의 일탈을 무마하면 된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들이 독일의 불합리한 조세체계와 세정(稅政)에 대한 거부감에서인지 '탈세(脫稅)' 문제에 대해 꽤나 온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탈세를 '떠오르는 국민 스포츠', '정당방위'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적 정서에선 이물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개업 1년 만에 100억 원을 벌었다는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 게임업체 넥슨과의 '부적절한 거래'가 드러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진경준 검사장 등 정부 고위직들이 탈세 의혹을 받으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최근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세금전쟁>은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다른 세금 관련 책들에 비해 쉽게 읽히는 장점을 가졌다. '수염세'와 '창문세', '살인세' 등 서양 역사에서 위정자들이 세수 증대를 위해 도입한 기상천외한 세금을 소개하는 부분은 특히 흥미로웠다.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이지윤 옮김/재승출판/400쪽/1만 8000원.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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