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가 열전] 20. 김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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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떠난 지 20년, 그러나 인기는 아직 '현재형'

TV를 통하지 않고는 스타가 될 수 없었던 시절 콘서트만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한 인물인 가객(歌客) 김광석은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다. 권혁재·페이퍼크리에이티브·임종진 제공

서른 즈음에 떠난 그가 남긴 조촐한 디스코그래피는 정규앨범 4장과 비정규앨범 2장, 그리고 사후 발매된 미공개 라이브 실황음반을 포함해 그리 많지 않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TV를 통하지 않고는 스타가 될 수 없었던 1990년대, 1000여 회를 상회하는 콘서트만으로 대중음악계를 제패한 유일무이한 인물이 바로 가객(歌客) 김광석이다. 그는 사후에도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의 인기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일어나, 김광석' 영상보고서 공개

90년대 라이브 스타·대학가 우상
절절한 창법 인기, 음반시장 '돌풍'

팬 101명이 '서른 즈음에' 레코딩
장르·세대 아우르는 고인에 헌정

■떠난 지 20년 만에 나온 영상 보고서


최근 열렸던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한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김광석의 사망 당일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문들을 현장 취재한 충격적 영상 보고서인 이상호 감독의 '일어나, 김광석'(Who Killed Kim Kwang-seok)이었다. 그가 떠난 지 20년 만에 나온 이 작품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만나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때때로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져 오던 추스를 수 없는 그리움을, 허망하게 그를 떠나보낸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 대봉동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서울로 이사하면서 서울에서 성장한다. 고3 시절부터 그는 제법 괜찮은 곡들을 작사·작곡했는데, '그대 웃음소리'는 그때 만들어진 노래였다. 19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진학 후 민주화 시위로 온 세상이 들끓었던 시절 그는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화해했다. 그러다 김민기의 록 오페라 '개똥이' 음반에 참여하면서 김창기, 유준열 같은 또래 음악 지망생과 음악 교류를 하게 된다.

1984년에는 대학생들의 노래패로 훗날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가입했고, 노찾사 1집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김창기, 박기영, 박경찬, 유준열, 최형규, 이성우 등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했다. 처음에 이들은 취미 삼아 노래했지만 우연히 이들의 음악을 접한 산울림 김창완의 권유로 1988년 1월 데뷔 음반을 발매하게 됐다. 그 풋풋하고 신선한 청춘의 음악은 대학가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음반 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거리에서'는 큰 인기를 누렸는데, 절절한 창법을 선보인 김광석도 주목을 끌게 되었다.

같은 해 9월 발매된 동물원 2집에서도 김광석은 도드라졌다. 여러 곡이 인기를 모았지만 여기서 가장 각광받은 곡 역시 그가 노래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였다. 한 해 두 장의 음반을 내놓고 대학가의 스타 그룹이 된 이들은 향후 진로를 놓고 고민을 해야 했다.

사진은 대중음악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김광석 다시부르기 2집'.
■가객 김광석의 시대 활짝 열어

평생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던 그는 본격적인 가수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그룹을 탈퇴했다. 1989년 대망의 데뷔 음반을 출반하면서 가객 김광석의 시대를 열어가기에 이른다. 1989년 9월 20일 출시된 '김광석 1집'(1989)은 열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김광석의 음악 혼이 빛을 발하는 음반이다. 김광석 전설의 서막을 장식한 기념비적인 첫 번째 음반에 수록된 10곡 중 '너에게', '기다려줘',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때문이야',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등 4곡을 제외한 6곡을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웠다.

'김광석 2집'(1991)은 1991년 2월 20일 발매됐다. 이때 김광석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라이브 스타였고 대학가의 우상이었다. 총 10곡이 담긴 2집에서는 한동준의 '사랑했지만', 김형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광석의 자작곡 '슬픈 노래'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2집과 같이 다양한 작곡가들이 참여한 '김광석 3집'(1992)에서 '나의 노래'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널리 알린 김광석은 '김광석 다시부르기 1집'(1993)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내놓는다. 이 앨범은 과거에 그가 불렀던 노래들을 리메이크 형식을 취해 다시 발표한 앨범으로 무엇보다도 성숙해진 해석력을 보여준 김광석 최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김현성의 '이등병의 편지'를 세상에 알린 그는 다음해 내놓은 '김광석 4집'(1994)에서 '일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자기 색깔을 제대로 내보이며 음악적 궤도에 올라선 앨범으로, 김광석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는 4집에는 본인의 자작곡이 4곡이나 들어 있는 대한민국 대중음악 명반이기도 하다. 이후 김광석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매김한 '김광석 다시부르기 2집'(1995)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예전에 불렀던 곡들을 다시 부른 1집과 달리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포크 음악의 고전들을 위주로 실었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이 실린 이 음반은 실질적인 유작(遺作)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모던 포크 뮤지션 선배들에게 헌정한 앨범이라는 대중음악사적 가치가 높은 음반이기도 했다.
'김광석 오마주 나의 노래 Part.2'.
■'김광석 신드롬'은 여전히 진행형

1996년 1월, 새해 벽두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게 된다. 석연치 않은 죽음을 뒤로 한 채 그의 음악은 식을 줄 모르는 재평가와 재생산의 장을 열기 시작한다. 백창우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타이틀로 한 고인의 첫 번째 트리뷰트 앨범 '가객'(1996)을 시작으로 고인이 된 김광석의 육성으로 녹음된 곡을 앨범 수록곡 전체에 수록하여 동료 가수들이 같이 부르는 형식으로 녹음된 '김광석 Anthology 1'(2000),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된 '부치지 않은 편지'와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 인기 몰이를 한다. 이듬해에는 그의 미발표곡과 히트곡을 체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반주에 입혀 '김광석 5th Classic'(2001)이 발표됐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서해순의 위드33뮤직을 통해 각종 편집앨범을 유통사를 바꿔가며 출시한다. 2004년 미공개 라이브 실황음원을 발굴한 소규모 레이블의 열정으로 9년여의 시간을 거쳐 2012년 김광석의 노래와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Unforgettable, Kim Kwang Seok'(2012)이 세상에 나왔다.

2014년 김광석 탄생 50주년을 맞아 그의 노래에 담긴 진정성에 대한 헌정, 세대 간 음악을 통한 공감의 이음새가 되어줄 프로젝트 '김광석 Hommage 나의 노래 Part.1'(2014)이 발표되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 2집'(1995)이 김광석 자신이 대한민국 모던 포크 선배 뮤지션들에게 헌정한 앨범이라면, '김광석 Hommage 나의 노래 Part.1'(2014)은 선후배 뮤지션들이 김광석에게 헌정한 앨범이리라. 사후 19주기인 이듬해에도 이 프로젝트는 이어져 '김광석 Hommage 나의 노래 Part.2'(2015)도 발매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트리뷰트 앨범 사상 최초 기획으로 김광석 팬 101명이 레코딩 참여로 이뤄낸 오마쥬 싱 어롱(sing along) '서른 즈음에' 트랙이 담겨져 있었다. 장르와 세대를 아우르는 고인에 대한 특별한 헌정이었다.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김광석 신드롬, 그리고 스무 해 동안 숨겨져 있었던 진실의 조각들. 수사권과 영장 한 장 없이 맨손으로 건져 올린 사실의 조각들. 일어나요… 광석이 형….

최성철·페이퍼크리에이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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