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이름으로 '반문화 테러' 붉은 가위표 하나에 짓밟힌 존엄 대륙의 '흑역사'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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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과거는 있다. 현대 세계 경제와 군사, 정치, 외교 면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은 독특한 시장 사회주의 모델을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중국에도 흑역사가 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 대륙 방방곡곡을 휘몰아친 '문화혁명'(문혁) 칼바람이다. 이름부터가 아이러니다. 인간 존엄의 밑바닥조차 철저히 파괴했던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반문화 테러가 문화와 혁명의 거죽을 두르고 있다니.

1966~1976년 '문화혁명'
실제로 피해자였던 저자
피해·가담자 경험담 모아
상처 치유 조치 필요성 주장

청산 못한 역사는 다시 반복
우리 속 숨은 '문혁' 경계를


문혁의 도화선은 베이징 부시장 우한이 명나라 때 황제에 의해 쫓겨난 청렴한 관리 해서를 주인공으로 해 1959년 쓴 희곡 '해서파관'이었다. 6년 뒤 펑더화이를 숙청한 마오쩌둥의 잘못을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해석한 비평이 발표되면서 칼바람이 시작된다. 대약진운동 실패, 도심에 넘쳐 나는 지식 청년들, 부족한 일자리. 당에 대한 인민의 불만이 고조되던 기막힌 시점, 누군가가 분출구를 찾아낸 것이다.

50년이 지났지만, 중국에선 아직 이 문혁의 책임을 마오에게 전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의 일시적 판단 착오 때문이긴 하지만 일부 반동 세력의 책임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백 사람의 십 년>은 우리 식으로 치면 후일담 문학에 속하는 책이다. 스스로 문혁의 피해자였던 지은이가 문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1986년부터 피해자와 가담자들로부터 구술을 듣고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모아 1996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역사는 저명한 사람을 편애한다. '문혁 기간 3만 4800명이 죽었고, 70만 명 이상이 박해 받았다'는 중국 정부 발표에는 숫자들이 특정 동사와 나열돼 있을 뿐, 어떤 인민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민중과 울분을 참고 있는 수많은 대중을 만나고 싶었다"는 지은이의 집필 동기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지은이 앞에서 자신의 문혁 10년을 털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사상과 이념이 인간애를 초월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눈앞에 펼쳐 놓은 것처럼 실감나게 깨닫는다.

아무리 출신 성분이 좋고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어리거나 노약자여도, 어느 날 갑자기 우파로 찍혀 자아비판을 당하고 돌팔매와 똥물 뒤집어쓰기를 감수해야 했다. 이름 위에 붉은 가위 표시를 한 '나는 반동 우파 ○○○입니다'라는 팻말을 목줄에 걸고 마을 사방을 끌려다니면서 말이다.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혁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런 테러에 앞장선 홍위병 중에는 이제 겨우 중학생, 고등학생뻘도 많았다.

이런 치욕에 짓밟힌 존엄을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고, 심지어 어느 아버지는 의학을 공부한 딸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삶을 마감하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숨통을 끊고 3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살아남은 딸은 평생 자신이 아버지를 도와 드린 것인지 살인한 것인지 결론 없는 질문을 던지며 번민한다.

이를 악물고 굴욕을 견딘 피해자들은 생존 능력을 실험하는 살인적 노동 현장에 내던져져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의식주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최대 10년을 버텨야 했다. 

백 사람의 십 년
그 광풍이 잦아든 지도 40년, 새삼 공맹의 인본사상을 재료로 정신문화의 선진성을 홍보하는 중국을 향해 세계 지성계는 실제 세계의 문화강국으로 존중 받으려면 중국 당국이 문혁의 과오를 철저히 성찰하고 인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보도연맹 집단 학살, 제주 4·3 사건,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이름 없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시민들의 염원대로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파와 반동이 언제든 필요하면 만들어지던 문혁에서, 세월호·사드 종북몰이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간첩(단) 조작 사건이 떠올랐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본영에서부터 불거져 나오는 반이민주의와 인종주의, 파시즘의 불온한 기운도 연상됐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문혁이 똬리를 틀고 언제든 고개를 쳐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역사의 잘못은 얻기 힘든 재산'이라는 서늘한 성찰이 없다면 언제든 그런 광풍을 일으키는 주모자 대열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펑지차이 지음/박현숙 옮김/후마니타스/408쪽/1만 7000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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