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부산 청춘들] 1. 9평 임대주택에 갇힌 여대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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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년들, 주거에 '발목' 행복주택 먼 얘기

스물넷 여대생 박은하(가명) 씨는 9평 남짓한 임대주택에서 알바와 취업 공부를 병행하며 미래를 준비 중이다. 은하 씨는 임대주택 재계약을 위해 최근 정규직 일자리를 포기했다. 정종회 기자 jjh@

스물넷 여대생 박은하(가명) 씨는 9평 남짓한 임대주택에 혼자 산다. 대졸 공채를 준비하는 은하 씨의 꿈은 여러 개다. 장애 아동 돌보기, 배낭 메고 세계 여행, 내 집 마련 등 평범하지만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나는 꿈들이다.

이 꿈들을 이루기 위해선 번듯한 회사에 취직부터 해야 한다고 은하 씨는 생각한다. 지난 4월 부산의 한 중견업체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며 은하 씨의 첫 소원인 취직이 손에 잡힐 듯했다. 그때 은하 씨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9평 남짓한 임대주택이었다.

임대주택 재계약 놓칠까 봐 정규직 취업도 포기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주택 거주
월수 240만 원 넘으면 3순위 돼
중견업체 최종 면접장 아예 안 가
알바하며 전세보증금 모으기 선택

수천만 원 보증금 '하늘의 별 따기'
행복주택 사업도 먼 나라 이야기
주거에 발목 잡힌 청년 대책 필요

은하 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다. 어렸을 적 말 못 할 사정으로 부모님과 헤어져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살았다. 대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카페 서빙, 근로장학생, 기숙사 청소 등 아르바이트를 3~4개씩 뛰며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홀로 감당했다. 그럼에도 매 학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학점이 우수했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은하 씨는 지난해 7월부터 대학 기숙사에서 나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LH가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 저렴하게 임대하는 '기존주택 매입 임대' 사업에 신청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은하 씨는 입주자격 1순위로 인정받아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은하 씨가 직장을 가지게 되면 1순위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득이 생기더라도 월급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 평균소득(3인 이하 481만 6660원)의 50%인 240만 8330원 이하면 2순위 자격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3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기존주택 매입 임대 사업은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데 1·2순위면 재계약이 가능하나 3순위면 재계약을 할 수 없다. LH에 따르면 현재 부산에는 기존주택 매입 임대 사업으로 3550가구가 공급된 상황. LH 관계자는 "대부분 1순위 입주자 몫으로 3순위가 되면 재계약은 물론 신규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은하 씨는 지난 4월 지원한 중견업체의 월급이 보너스 등을 합치면 250만 원 언저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최종 면접장에 아예 가질 않았다. 당장 내년 이맘때쯤 주택 재계약 기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은하 씨의 발목을 붙잡았다.

혹시 은하 씨가 '배가 불렀다'고 생각하는가. 부산발전연구원이 지난해 부산에 거주하는 청년(20~39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이 생각하는 적정 소득은 월 평균 291만 원이었다. 응답자의 70.6%가 최소 250만 원 이상은 받아야 부산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청년포럼 박진명 위원장은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 290만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청년들의 수입을 늘려줄 수 없다면 살아가는 데 사용되는 비용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하 씨는 취업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며 전세 보증금을 모으고 있다.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뒤 오후 5~10시 카페 알바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빠듯하게 생활하면 알바비 85만 원과 기초생활수급비 50만 원 중 매달 80여만 원가량이 통장에 모인다.

은하 씨가 최근에 확인해 본 결과 현재 임대주택과 비슷한 조건의 집은 전세 보증금이 최소 5000만 원부터 시작했다. 수천만 원의 보증금을 당장 구할 방도가 없기에 월세로 가야 하는데 보증금 500만 원에 매달 50만 원(관리비 별도) 정도가 눈에 띄었다.

정부는 은하 씨처럼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을 위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행복주택' 사업을 전국적으로 시행한다. 행복주택의 경우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은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의 100% 이하(본인·부모 합계), 취업 5년 이내 사회초년생은 평균 소득의 80% 이하만 돼도 입주 자격이 된다.

하지만 은하 씨처럼 부산 청년들에게 행복주택은 아직까지 먼 나라 이야기다. LH와 국토교통부는 올해 전국에 1만 1268세대의 행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하는데 부산에는 남구 용호동에 공급되는 14세대가 전부다. 부산시는 연제구 연산동과 기장군 일광지구에 행복주택을 지어 3000세대 가까이 입주시킬 예정이지만 입주는 일러야 2020년 말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팀 jyoung@busan.com



↓ 청년주거 특별취재팀

장병진, 조소희, 안준영, 민소영, 김준용
사회부 기자

↓ 자문단

임혁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지영 신라대 건축학부 교수
김상수 청년단체 '꿈꾸는 슈퍼맨' 대표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
박진명 부산청년포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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