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62> 낙동강 에코트레일 8. 안동 풍천배수장~예천 풍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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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리 넘는 풍천제방 곧은길, 선비의 지조 닮았다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지나온 길이 풍지교로 이어진다. 정토를 찾아가는 구도자처럼 낙동강 에코트레일 8구간 예천군 강둑을 걷고 있는 황계복 산행대장.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걸음걸이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알 수 없다. 낙동강이 서쪽으로 가는 이유도 굳이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태백에서 안동댐까지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안동 구간에 와서 상주까지는 서쪽으로 흐른다. '서방세계'가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라면, 낙동강은 신령스러운 정토를 향해 가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병산서원 만대루의 석양이 그랬고, 물돌이 마을 하회가 그런 곳이었다. 광덕교에서 구담교까지 이어지는 십 리(4㎞)가 넘는 곧은길에선 무아지경에 빠졌다.

■병산서원 가는 길에

낙동강 에코트레일 8구간은 병산서원 입구 풍천배수장에서 시작한다. 낙동강 유교문화길 안내센터가 가까이 있다. 희한하게도 배수장 직전까지 포장도로이던 것이 비포장으로 바뀐다. 도로 포장론자인 병산서원 입구 식당 주인에 따르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때문에 이 지경이다"고 말했다. 비만 오면 물웅덩이가 생기는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있지 않은 까닭이 그의 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걷는 이에게는 포장보다는 비포장이 몸에 좋다는 정도만 말하고 싶다. 다행히 병산서원 류씨 문중에서도 아직은 포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만대루
석양 질 때 강 건너 풍경 으뜸
강변 자전거도로 도보꾼에 인기
휴대폰 노래 들으며 걷는 맛 '황홀'

8구간 전체는 사뭇 길다. 풍천배수장에서 병산서원~유교문화길~하회마을~세계탈박물관~현회마을 유교문화길~매봉~광덕교~풍천제방~구담교~신풍양수장~지보나루~풍지교까지 31.3㎞를 1박 2일 동안 느긋하게 걸었다.

최근 내린 비로 길 곳곳에 웅덩이가 팼다. 길을 보수하느라 중장비가 와 있다. 비만 오면 벌어지는 풍경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소 소란한 길을 계속 걸어야 하나 생각하는데 어락정 아래로 '걷는길'이 따로 있다. 강가 절벽에 난 길을 재미있게 걸었다. 하지만 길지는 않다. 비포장도로와 합류하자 '병산서원 1㎞'라는 표지판이 있다.

병산서원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13세손 류시석 선생을 만났다. 자연과 가장 많이 닮은 건축물이라는 만대루(晩對樓)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었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에서 따온 말이지만, 실제 석양이 질 때 강 건너 병산과 만대루의 풍경은 으뜸이라고 했다. 서원은 학문과 제향의 역할을 하는 조선시대 사학이었다.

류 선생의 설명을 1시간 넘게 듣는 바람에 마음이 바빠졌다. 화산 자락을 따라 하회마을로 간다. 유교문화길로 조성된 화산 둘레길에는 안도현의 '낙동강'과 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란 시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햇볕 따가운 하회마을에는 관광객이 북적댄다. 유명한 양진당과 충효당을 보고 부용대를 가기 위해 하회나루로 갔다.

만대루를 소개하는 류시석 선생.
■부용대는 강 너머에

하회나루에 부용대로 가는 배는 있는데 사공이 없었다. 안내된 휴대전화로 물어보니 강물이 불어 배를 띄워도 강 건너편에 내릴 수가 없다고 했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다. 광덕교까지 가서 돌아 들어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 생략했다. 답사 때는 올라가 봤는데 과연 부용대에서 보는 하회마을이 좋았다.

하회마을 둑길을 따라 세계탈박물관으로 간다. 하회마을은 자가용 출입을 막는데 마을 입구에 큰 주차장과 상가(하회 장터)가 있다. 강을 따라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다. 부용대로 건너갔으면 광덕교까지 길을 많이 단축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장터에서 별미 안동찜닭과 콩국수로 배를 채웠다.

현회마을까지 한참을 돌아 나가야 매봉을 거쳐 광덕교로 가는 유교문화길이 있다. 안내 표시가 잘 돼 있어 길 찾기는 쉽다. 매봉은 명색이 산이라 약간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매봉을 지나 광덕교로 내려가는데 소나무 사이로 거대한 건물이 보인다. '청와대 아냐?'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지난 2월 대구에서 옮겨온 경북도청의 신청사였다. 멀리서 보는데도 웅장한 건물이 세워져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생각하니 경북도청의 건물이 호사스러운 것에 입을 댈 수는 없었다.

광덕교를 건너 광덕1리 소나무 숲에 있는 정자에서 한참을 쉰다. 솔바람이 시원하다. 강둑길로 올라서니 구담습지가 보인다. 구담습지는 안동댐으로 인해 유속이 느려져 생겼다고 한다. 밋밋한 강보다는 나무와 풀, 섬이 생겨 아기자기한 강이 보기에 좋다.

강둑의 이름은 풍천제방. 줄잡아 십 리가 훨씬 넘는다. 길은 거의 직선으로 뻗어 원근법 공부에 최고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가 되었다. 발에 동력이 생겨 자동으로 걷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노래 몇 곡을 들으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황홀했다.
하회마을 입구 공방에 전시된 탈 장승.
■서쪽으로 가는 강같이

어느새 구담교에 닿았다. 다리를 건넌다. 구담교 건너편 마을은 한 마을인데 두 개의 행정구역이 공존하고 있다. 안동시 풍천면 구담리와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가 한데 어울려 살고 있다. 낙동강은 안동댐부터 서쪽을 향해 흐르는데 병산서원, 하회마을, 광덕리, 구담리가 다들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예천에 접어들어서는 도화리도 있어 무릉도원이 그곳일 것 같았다.

강변으로 시원하게 놓인 자전거도로는 도보꾼들이 걷기에도 최고였다. 아주 가끔 자전거로 안동댐까지 가는 순례자들이 지나갔다. 인적 없는 곳이어서 반가웠다.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흔들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서방정토가 있다면, 이렇게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곳이리라.

호기롭게 삼강주막까지 가려던 기세가 꺾였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신풍양수장을 지나 하염없이 강둑길을 걷다가 지원팀을 불렀다. 그리고 병산서원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만대루의 석양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짧은 순간 보여주는 황홀한 석양이 아름다웠다.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학문의 완성이나, 하루의 완성이 만대루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선현들은 했을 것이다. 강 건너 병산이 일곱 칸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병풍처럼 고정되었다.

다음 날 일찍 서두른다고 했으나 아침까지 먹고 나니 해가 기운을 차려 만만찮은 열기를 뿜어냈다. 어제 못다 걸은 길을 이어 걷는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이국적이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 궁금했는데 사과 과수원에서 새를 쫓기 위해 화약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듣다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 소리도 처음엔 새가 겁을 먹지만, 나중엔 익숙해진다고 하니 푸른 들판을 울리는 폭약 소리가 안타깝다. 풍지교에 도착해 걸음을 멈춘다. 더위가 발목을 잡았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취재 협조=낙동강유역환경청

▲ 낙동강 에코트레일 8구간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낙동강 에코트레일 8구간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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