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가 달라졌다] 일상으로 찾아온 등대야, 주말 가족 나들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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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 시민들의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왔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사랑받는 영도등대. 열린 전망대와 커피가 있는 카페, 해안 산책로가 정겹다. 강원태 기자 wkang@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한겨울의 거센 파도 머무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파도가 머무는 외딴섬에 홀로 선 등대.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 '등대지기'의 가사에 등장하는 이미지다. 더는 밀려날 곳이 없는 땅끝 마을에 있는 등대는 항상 저 푸른 바다를 향하여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흔드는 시인의 '깃발'처럼 애달프고 고독한 존재로만 생각되어 왔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공간이라고나 할까.

'외딴섬 등대'는 이제 옛말
자연사박물관·야외공연장에
숙소 갖춘 '문화공간' 변신,

등대를 찾아가
'표류하는 일상' 구조해 보자!


그런 등대가 최근 우리 생활 주변으로 성큼 다가왔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시민 휴식 공간. 먼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연중 미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해양도서관, 자연사 박물관에다 야외공연장까지 갖춘 복합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등대들이 생겨났다. 땅끝 마을 등대들이 부산 시민들을 향해 손짓하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주말 데이트 코스로 등대를 찾는 사람. 체험 학습장으로 등대를 방문하는 사람. 심지어는 주말을 맞아 1박 2일 쉬어갈 휴양지로 등대를 선택하는 사람까지 생겨 났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근대식 등대는 1903년에 세워진 인천 팔미도등대다. 인천 상륙작전 때 뱃길을 밝히는 거점 시설로 활용됐던 바로 그 등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주로 건립된 우리나라 등대들은 대부분 군사 목적으로 세워졌다. 등대의 탄생 배경이 그렇다 보니 평범한 사람의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시설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영도등대에 근무하는 '33년 차 등대지기' 양희용(54) 씨의 증언은 다르다. 공식 직함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소속 '항로표지관리원'이지만 '등대지기'라는 호칭이 훨씬 정겹다는 양 씨는 "과거 어촌 마을은 등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고기를 잡아 생업을 이어가는 어민들이라 "뱃길을 밝혀 주는 등대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마을의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생활용품도 함께 사용하는 등 가족처럼 지냈던 것이 선배 등대지기의 모습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등대가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주말이 되면 양 씨가 근무하는 영도등대를 찾는 사람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자연사 박물관과 갤러리를 관람한 후 등대 아래편에 문을 연 카페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며 한잔 커피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등대지기의 일상이 되었단다. '지나간 세월을 낚고 싶을 때/이곳을 찾는다…'는, 갤러리 입구에 걸린 시인의 노랫말만큼 시민들에게 등대가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고 했다.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등대에는 하루 10차례씩 유람선이 오간다. 유람선 승객 중에는 등대를 찾는 관람객도 많지만, 낚시를 위해 오륙도를 찾는 사람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에 첫 불을 밝혔다는 가덕도등대는 콘도처럼 꾸민 숙소를 주말에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만큼 편안하고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 오죽하면 "등대에 기대앉아 술을 마시면/술은 내가 마시는데/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고 노래한 시인이 나왔을까.

그렇다고 등대가 마냥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존재는 아니다. 6초마다 한 번씩 반짝이는 등댓불은 밤바다를 헤쳐 가는 뱃사람들의 생명줄이라고 했다. 인공 GPS를 통해 수집한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45초마다 소리를 9.26㎞까지 전달하는 것이 등대라고 했다. 태풍 매미 때도 꺼지지 않았던 등댓불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등대지기, 즉 항로표지관리원들의 주장이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에 우뚝 선 등대. 보고 싶은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을 이어주는 불빛이 있는 곳이 바로 등대라고 했다. 그곳은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바다와 땅끝이 아니라고 했다. 새로운 출발을 알려주는 희망의 상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처럼 정겹고 활기찬 모습으로 시민의 품으로 다가온 부산의 등대. 올여름 주말에는 한 번쯤 시간을 내어 가까운 등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기왕이면 큰 등대를 찾아가서 주변 편의 시설도 즐기면서 등대지기의 사연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근 복합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등대. 그곳에 가면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아가는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진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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