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좋은 청년 디자이너] 송정 '마케 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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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없고 돈 없어도 함께 작업하면 무서울 게 없어요

구 송정역 인근에 있는 '마케 마케' 작업실 앞에서 왼쪽부터 차푸름, 김단아, 신효리, 조아라 씨. '마케 마케' 제공

부산에서 영감을 얻는 청년들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부산'이라고 말하는 청년 디자이너 그룹 '마케 마케'와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에 살면서 광안리에서 무한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청년 작가 표우종이다. 이들의 작품은 작가 자신과 꼭 닮아 있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청년 디자이너와 마주 앉았다.

■만들어내는 사람, '마케 마케'

'마케 마케(make make)'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자신들을 '텍스타일 디자인 크루(textile design crew·섬유 디자인 팀)'라고 불러 달라는 이들을 만나자마자 궁금증이 사르르 풀렸다. 크루 중 한 명인 조아라(23) 씨는 "어느 날 책을 보다가 '마케 마케'라는 단어가 갑자기 마음에 확 와 닿았다"고 했다. "이스터 섬에서 창조의 신을 '마케 마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면서 소행성의 이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딱'이라는 생각에 붙인 이름이다"고 말했다.

경성대 공예디자인학과 출신
차푸름·김단아·신효리·조아라
옛 송정역 인근서 디자인 활동

고래 모티브 그림·가죽공예 등
작품 스타일 서로 달라도
평생 함께 작업하는 삶 '희망'

송정해수욕장 근처 옛 송정역 인근에 작업실도 냈다.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집과 안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조화가 되는 그런 작업실이다. 햇살이 좋으면 송정해수욕장에 나가 태닝을 하고, 서핑도 하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작업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쪽염한 작품, 고래를 모티브로 한 그림, 디지털 프린팅한 셔츠 등 대중없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작업 결과물이 묘하게 이 작업실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넷은 경성대 공예디자인학과 텍스타일디자인 전공을 한 선후배 사이다. 가장 선배이자 대학원 조교인 차푸름(28) 씨가 이끌다가 후배들이 졸업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차 씨는 "지난해 2월 후배들이 졸업하던 날, '언니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받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작업 내용이 좋아서 애정이 있던 친구들이었는데 졸업하면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웠다"고 전했다.

김단아(23) 씨는 "푸름이 언니는 우리한테는 말이 잘 통하는 선생님, 작은 교수님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 무렵부터 이들은 사총사가 됐다. 어디를 가도 무서울 게 없고 서로를 의지하는 하나의 팀이 된 것이다.

■우리는 '동서남북', 그리고 '똥개'

작품에 전념하기 위해 작업실을 내자고 결정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을 저지르는 쪽인 차푸름 씨, 조아라 씨가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 지금의 작업실을 선택하고, 일을 차분히 결정하는 편인 신효리(23) 씨가 승인했다.

넷은 한눈에 봐도 각자 개성이 뚜렷해 신기한 조합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그런 점이 작업하기에 좋다고 말한다. 조 씨는 "우리끼리는 동서남북이나 똥개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과 모두 다른 성격 때문이다. 또 똥개처럼 송정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부분이 작업실 앞을 돌아다니는 네 마리 똥개 같다며 스스로 이런 별명을 붙였다.

같은 전공을 했지만 좋아하는 작업도 다르고 결과물도 달랐다. 신 씨의 경우 학생 때 취미로 배웠던 가죽공예에 빠져서 지금은 부산 가죽공예 브랜드인 '도선 디자인'에서 일을 하면서 가죽공예를 배우고 있다. 조 씨는 디지털 프린팅이 특기다. 김 씨는 조각보로 하는 규방 공예를 주로 한다. 조각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차 씨는 고래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린 드로잉, 천 작업 등을 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작업한 결과물을 광안리해수욕장에 있는 마을기업 '오랜지바다'에서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차 씨가 부산을 생각하며 고등어, 갈매기, 동백꽃을 넣어 만든 '아나(ANA)' 손수건은 인쇄한 400장 모두 완판됐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아나'는 부산 사람들이 무언가 건네거나 선물할 때 하는 친근한 말로, 부산말을 브랜드 이름으로 삼았다. 

■행복하기 위해 만드는 작품

차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배들이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면서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는 "텍스타일을 전공해놓고는 상관없는 컴퓨터 디자인 쪽 일을 하거나 스튜어디스가 되는 후배를 보면서 안타까웠다"면서 "작업할 때는 반짝반짝 빛났던 후배들의 눈빛이 취직하면서 흐려지는 것을 자주 봤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차 씨는 평생 작업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마케 마케'와 함께 쭉 작업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똥개처럼 살지만, 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후배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철이 없고 경제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작업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게 차 씨의 소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만든 슬로건이 '웨이브 프롬 어스(wave from us)'다. 해석하자면 '우리가 만든 물결이 큰 파도가 되기를'이다. 나아가서는 작업 결과로 작업실 월세를 버는 것이 소박한 목표다. 작업실을 유지할 만큼이 돼서 피서객이 없는 송정에서 겨울을 나는 게 현재의 꿈이다.

"재봉틀 작업을 하는데 노루발이 없어서 급한 대로 했더니 실로 점이 만들어지더라. 다 만들고 보니 오히려 그게 매력 포인트였다. 앞으로도 그렇게 작업하고 싶다. 있는 대로 작업하고 그 결과 행복하면 됐다. 언젠가 우리가 만든 물결이 큰 파도가 돼서 돌아오지 않을까." '마케 마케'의 디자인 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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