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메리·전봇대 종… 매축지마을 보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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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축지마을이 지정한 마을문화재들. 한 식당 앞에 놓인 30년 된 '로즈메리 나무. 마을관리사무소 '마실' 제공

마을 골목길에 '국보'보다 소중한 '문화재'가 있다? 부산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에서 오래된 공간이나 물건들을 '마을문화재'로 지정하는 이색 사업을 벌여, 어떤 보물들이 발굴될지 관심이 쏠린다.

전국 최초로 시도되는 '마을문화재 발굴' 사업은 시민 복지법인 '우리마을'과 부산은행이 공동 운영하는 마을관리사무소 '마실'이 주민들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매축지마을에 둥지를 틀고 마을재생 활동을 해온 '마실'은 보여주기식 사업보다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주민들과 뜻을 모았다. 일제강점기 부산진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만들어진 매축지마을은 부산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전국 첫 '마을문화재 발굴' 사업
마을의 가치 재발견에 초점
10개 최종 선정 뒤 관광 자원화
"우리에겐 국보보다 소중하죠"


마을 활동가들은 올해 초부터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옛 이야기를 수집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렇게 반 년이 흐르는 동안 로즈메리, 약국간판, 전봇대 종, 골목정원, 좁다란 골목길, 연탄창고 등 매축지마을만의 보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들을 불러 모으는 용도로 쓰였던 전봇대에 내걸린 '종'
한 식당 앞에 놓인 로즈메리는 담장을 훌쩍 넘길 정도로 키가 커 손님들에게 인기다. 수시로 화분이 도난당하자 참다못한 식당 주인이 초대형 화분을 가져다 '꼬마 로즈메리'를 심었고, 이후 나무는 3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앙약국'의 오래된 간판은 영화 '마더'에도 등장해 낯이 익은 문화재다.

마을 한가운데 전봇대에 내걸린 '종'은 매축지마을의 대표 상징물이다. 과거 불이 나거나 물이 들면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용도로 쓰였지만, 30여 년 전 화재를 마지막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요즘은 바로 옆 슈퍼의 귀가 잘 안 들리는 주인 할머니를 부르는 용도로 간간이 울린다. 폭 1m 남짓한 '좁다란 골목길'과 '연탄창고' 안에는 팍팍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골목정원'은 지저분한 골목길을 바꿔보자는 한 주민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집 앞을 청소한 뒤 화분을 하나둘씩 내놓았고, 옆집들도 동참하면서 골목 전체가 푸르게 변했다.
영화 <마더>에 등장해 낯이 익은 '중앙약국'의 오래된 간판.
'마실'은 다음 달 설문조사로 주민 의견을 물은 뒤 '마을문화재' 10개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의 사연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박민성 지원단장은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마을문화재를 통해 주민 스스로 마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관광객들도 매축지마을의 껍데기가 아닌 속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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