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이레셔널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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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궤변의 점철… '너무 나가 버린' 우디 앨런표 영화

영화 '이레셔널 맨'은 철학교수와 제자를 둘러싼 소문과 실체를 그린 미스터리이다. 프레인 제공

"에이브는 달변가여서 항상 말로 쟁점을 흐리게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흘러나오는 질의 독백만큼 이 영화를 통렬하게 설명하는 문장도 없을 것이다. 끝없는 말의 홍수,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인 분위기, 실험적이라 할 만한 과감한 연결들, 결핍을 감추긴커녕 불안을 과시하는 듯한 캐릭터까지. 21일 선보인 '이레셔널 맨'은 소위 '우디 앨런 영화'의 특징들로 똘똘 뭉친 영화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범작 혹은 헛발질로 기억될 것 같다.

삶의 회의에 빠진 철학 교수
비이성적 인물로 균열 표현
맥락 없이 허무한 결말 아쉬워


새로 전임 온 철학 교수 에이브(호아킨 피닉스)가 삶의 회의에 빠져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외려 퇴폐적인 매력에 반응한다. 동료 교수 리타(파시 포커)는 에이브가 지루한 시골에서 자신을 구해줄 사람이라 생각하고 학생 질(엠마 스톤)은 에이브를 자신이 보살필 수 있을거라 믿는다. 하지만 에이브가 삶의 활력을 찾는 건 부정한 짓을 저지른 판사를 단죄할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 에이브가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자 그에게 관심을 갖던 두 여인은 변화를 금방 알아차린다. 이윽고 질이 판사 살인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두 사람의 관계도 급변한다.

'환상의 그대'(2010)과 '블루 재스민'(2013) 사이 어딘가, 아니 '매치 포인트'(2005)와 '스쿠프'(2006)가 뒤섞인 영화라고 해야 할까. 현실과 영화, 액션과 리액션의 경계를 지워나가는 혼란스런 구성은 우디 앨런의 특기지만 이번에는 통제 없이 너무 나가버렸다.

비이성적, 비논리적이라는 제목(이레셔널) 그대로 영화의 전개는 우연과 의식의 흐름, 사변적인 논설로 채워져 있다. 거기까진 수용 가능한 범위다. 하지만 제법 그럴 듯 했던 설정을 거대한 농담 취급하고 내팽개칠 때 허무한 결말은 에이브 교수가 끝없이 떠들어대는 궤변처럼 텅 빈 속살을 드러낸다. 비이성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실의 균열을 드러내면서도 끝내 관객을 향한 설득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이전 작품들과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이레셔널 맨'의 조각조각은 그럴듯해 보지만 그 조합이 아무 의미로 연결되지 못한다. 에이브의 도덕, 질과 리타와의 감정마저 모두 허상 속으로 흩어버린 후 관객에게 남기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그 비이성적인 상태와 전개가 영화의 의도라면 앞으로 우디 앨런의 영화는 더 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아닐 것이란 전제 하에 말하자면 '이레셔널 맨'은 그 동안 우디 앨런이 사랑 받았던 이유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영화다.

아무리 우디 앨런의 세계를 해체하고 분석해봐야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다루기 까다로운 개성이 감독의 감성과 결합해 섬광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그 아슬아슬한 차이들이 모여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걸작과 범작을 가른다. 활동을 멈추지 않는 감독이니 만큼 그런 순간을 앞으로도 쭉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기대하자면, "훌륭함보다도, 행운이 함께 하길." ('매치 포인트' 마지막 장면 중에서)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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