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꽂힌 묘족 아가씨 강미려, "차오루보다 먼저 활동한 한류 묘족 1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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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이태원이다. 세계 각국의 피부색이 모인 이곳에서 만난 중국인 강미려는 이곳이 어색하지 않아야 할 외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묘한 이질감은 어쩔 수 없다. 한국말을 상당히 유창하게 하지만, 그녀는 사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묘족이기 때문이다. 묘족은 우리 문화와 비슷한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강미려도 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돼지 부속같은 독특한 음식도 잘 먹었다. 
 
"묘족 전통 음식 중에 '쓰완차이'라고 있어요. 김치하고 모양도 만드는 법도 비슷해요. 맛은 맵고 쓴 게 갓김치 같아요. 김치 먹기 어려워하는 외국인들도 있는데, 저는 아주 좋아해요"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강미려는 김치와 함께 앞에 놓인 순대와 삶은 돼지간, 오소리감투도 맛보기 시작했다. 순대는 먹어봤지만, 간이나 오소리감투는 처음 먹어본다며 "보기랑 다르게 쫄깃하고 고소한게 입맛에 맞는다"며 즐거워했다.


이어 막걸리도 한 잔 마시더니 묘족의 술 이야기도 꺼냈다. 묘족의 전통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술인 미주(米酒)는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독하면서도 시원한 목넘김이 있다. 다른 술로는 유명한 마오타이주(茅台酒)가 있다. 특히 구이저우(貴州)성의 마오타이주는 중국의 모든 술 중에서도 최고의 명품술로 여겨진다.
 
강미려는 마오타이주로 유명한 구이저우성 출신의 묘족이다. 묘족은 중국의 주요 소수민족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걸그룹 피에스타의 차오루로 인해 최근 널리 알려졌다. 차오루는 구이저우와 이웃한 후난(湘)성 출신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은 묘족이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다.
 
묘족은 고구려의 유민이 기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직 설(說)일 뿐이지만 음식 뿐 아니라 명절 풍습 등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강미려는 어릴 때 우연히 본 드라마로 한국에 '꽂혔다'.
 
"'가을동화'를 2002년에 우연히 봤어요. 극에서 한국의 '정'이라는 문화가 신기하면서도 익숙한 상반된 느낌을 주더라고요. 드라마 보고 나니 한국 사람들은 다 친절할거 같아 보였어요. 그때부터 한국 오는 게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 친구들끼리 롤링페이퍼 쓰면 꼭 한국 가고 싶다고 썼었죠."
 
강미려의 관심은 드라마에 이어 한국 영화까지 확대됐다. 독특하게도 그녀가 주목한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이다. 영상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에서 김 감독의 작품들로 영화를 배웠다. 그리고 이를통해 누구나 살면서 현실과 이상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미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김 감독님 영화는 현실을 냉혹하게, 너무 심각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끝날 때 일말의 희망도 살짝 비춘다. 차가운 세상에서 따뜻함을 내보이는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후 강미려는 2012년 영남대 교환학생으로 꿈에 그리던 한국땅을 밟았다. 그리고 중국에서 대학 동아리 행사 사회자, 고향의 라디오 인턴 MC 등으로 쌓았던 방송 경험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터트리기 시작했다.
 
오직 '독특하다'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선택한 그녀의 예명은 생강이란 뜻의 영단어 'Ginger'다. 이름처럼 그녀의 한국 활동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말과 글'로 승부를 본다는것이다.
 
▲ 꿈과 못다한 효도
 
언론정보와 영상을 전공한 강미려는 한국의 소식을 중국에 전하는 프로그램의 MC, 리포터 등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언론사의 프리랜서 기자, 대종상 영화제 통·번역, 한국인 대상 중국어교사 등 글과 말로써 자신만의 강점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한국말이 필수죠. 그런데 한국말 구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또 들을 때 느껴지는 '둥글둥글한 맛'이 중국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한류의 한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데 문제는, '잘' 하는건 영어보다 어려워요. 아직도"
 
그 예로 강미려는 과거 촬영장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꺼냈다. 한 방송을 준비 중이었는데 PD가 오질 않아 촬영이 지연되고 있었다. 강미려 본인은 오직 그가 언제 오는지 궁금해서 스태프에게 "PD는 언제 오시냐"고 물었다. 하지만 스태프들은 그녀가 촬영 지연되자 짜증을 내는 것으로 알고 "왜 재촉하냐"라고 언짢아했다. 그녀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겠다. 이제는 PD가 아무리 늦게와도 그런 말 절대 안 한다"며 웃어보였다.
 
슬슬 말문이 트이자 강미려는 활동 범위를 넓혔다. 2015년부터 그녀는 기존의 MC나 리포터는 계속하면서 작사, 성우, 더빙까지 소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3월까지는 한국의 뷰티 콘텐츠를 중국에 소개하는 패션프로그램 '시상가인' 메인 MC로 활약했다. 동시에 KTV '핫 플레이스 코리아'의 고정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또다른 국내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강미려는 올해 한국 다문화 예술협회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우리가 과거를 볼 때 꺼낼 수 있는건 추억과 글, 사진, 영상 등이에요. 그런데 추억은 잊을 수 있지만 다른 건 영원히 보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어릴때부터 쓰고 찍고 그리는 것들을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창작이 좋아지고, 비디오와 TV를 좋아하게 됐고, 이렇게 방송에도 나오게 됐죠. 그런데 꿈은 좀 더 멀리 있어요."
 
강미려가 활동 영역을 넓히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다양한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객도 되고, 먹방도 찍고, 좋아하는 한국 배우인 장혁과 데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연인이 되어보기도 하는 등 나에 대한 제한은 카메라 안에서는 상당 부분 벗어던질 수 있다.
 
그래서 강미려는 짬짬히 연기수업을 받고 있다. 배우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꿈이다.
 
"어릴 때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리 집이 TV를 가지고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 다 와서 함께 영화를 보며 웃고 즐겼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때 사극이나 액션물을 많이 봤는데, 나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이를 해볼 수 있는 일이 배우 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예술도 배우기 시작했죠."
 
그녀의 말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보통 예술과 학업은 병행하기 어렵다. 금전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배움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중 한 쪽만 선택하는 편인데 자신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 어렵게 공부해오고 있다. 방송일은 어느정도 올라왔기 때문에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위해 연기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다문화예술학회에서는 한국에서 방송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연기나 워킹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강미려 역시 이곳에서 연기수업을 받으며 언젠가 한중 합작 작품을 통해 중국과 한국의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꿈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 간간히 뮤직비디오나 모델, 더빙과 성우를 통해 실전도 병행하고 있다.
 
강미려에게는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한국으로 건너와 한동안 고향을 못간 사이에 아버지께서 병을 얻으셨고, 결국 돌아가셨다. 겨우 아버지의 임종은 지켰지만, 그녀는 병석의 아버지를 돌봐 드리지 못해 평생 미안한 마음이다. 
 
강미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와도 관련이 있다. 그간 못한 효도를 딸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들로 대신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꾸준히 자료를 모아 아버지께 바치는 책, 그리고 아버지의 자서전을 꼭 쓰고 싶다. 이렇게라도 효도를 하고 싶다"는 후회 섞인 바람을 털어놨다.
 
한국에 온지 4년이 지나가는 강미려는 종종 방송일이 힘들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힘듦'이 배우와 효도를 위한 길목임을 생각하면 사실 좀 힘들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힘든 게 더 좋아요. 어쨌든 바쁘고, 절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거니까요. 물론 목표는 멀었지만 이룰 수 있도록 좀 더 단단해지고 계속 노력할거에요."
 
사진=강민지 기자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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