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원의 영화와 삶] 찬탄과 혐오 사이,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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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중 한 장면. 부산일보DB

하마터면 이 영화, 놓칠 뻔했다. 8년 전 '미쓰 홍당무'로 데뷔한 이경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비밀은 없다'는 이제 겨우 개봉 2주 차에 들어섰을 뿐인데 거의 폐장 분위기였다. 간신히 찾은 상영관은 아주 작고 휑했다. 올해 한국영화계 최악의 흥행참패, 혐오 혹은 열광이라는 극단적인 관객반응. 그나마 일치하는 대목은 손예진의 연기에 대한 찬사 정도다. 가로질러 말하자면 '비밀은 없다'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선연하고 개성 있는 표정을 지닌 수작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은밀히 작동하는 혐오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한 뒤 그 실체를 재성찰하게 하는, 탁월하게 대담한 성 정치학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담함이 지나쳤던 걸까. '낯설고, 불친절하고, 산만하며, 황당하고, 신경질적이고, 기형적이며, 이상하고, 불편한, 정신 나간 영화'라는 네티즌의 성토 앞에 한동안 생각이 머물렀다. 이 격렬한 비난과 불쾌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비밀은 없다'는 과연 우리(사회)의 무엇을 건드린 것일까. 이 영화가 그토록 격렬하게 거부당한 이유를 살피는 일이 이경미의 영화와 그 인물들을 방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주의 왕따 등 사회모순 속
숨은 젠더문제에 섬세한 접근

다른 관점 드러내는 영화 부진
가부장적 한국사회의 한 단면


실종된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 엄마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 영화는 마치 정치 스릴러처럼 시작된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남편의 유세 첫날부터 15일간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 장르 규약을 따르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의 빈부격차 왕따 동성애 등 한국사회의 빨간 버튼들을 차례로 누르지만 결정적인 버튼은 약간 숨겨져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그냥 이 영화는 '미친 여자'와 '불량소녀' 이야기다. 우리는 딸의 행방을 좇아 온갖 정신 나간 짓을 벌이는 엄마를 내내 지켜봐야 하고, 어른들을 상대로 대담하고 발칙한 범죄행각을 꾀한 왕따 비행소녀와 마주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여혐 현상을 은밀하게 반향하며 우리를 한없이 불편하게 하거나 슬픔에 젖게 하는 그녀들. 고립되고 어리석고 광적인 이 여자들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영화는 이제껏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들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았다. 돌이켜 보니 이경미 감독은 그들을 껴안을 것인지, 경멸할 것인지를 두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 적이 없다.

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감독의 성별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그녀들에 대한 반응이 양성평등 순위 115위(세계경제포럼 통계)에 머문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영화에 대한 놀랄 만한 몰이해가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젠더 대립적인 반응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타자에 대한 편견을 강력하게 되받아치는 이 용감한 영화의 '다른' 목소리가 더 멀리 퍼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다른 생각에서 시작된다. '셀룰로이드 천장'이라는 게 있다. '유리천장'의 영화계 버전으로, 이를테면 스크립터 미술 의상감독 작가는 되지만 감독 자리에 여성은 곤란하다는 얘기다.(우리의 통계는 없지만 할리우드의 여성감독 비율은 고작 7%다. 첨언하자면 한국은 '유리천장지수' OECD 4년 연속 꼴찌(이코노미스트지 발표)다.) 남성 중심적인 제작 시스템에서 남성 중심적인 영화가 나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밀은 없다'에 대한 몰이해와 산업적 실패가 더 씁쓸한 것은 그래서다. 하나의 성별에 지배되지 않는 다른 감각, 다른 시선, 다른 재현이 한국영화에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이경미 같은 여성감독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강소원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부산영화평론가협회 편집이사와 부산독립영화협회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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