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허덕이는 부산시민] 물가 오르는데 일자리는 줄고 여유 재산도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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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도 버텼지만 이번엔 문 닫을 수밖에 없네요.'

조선·해운 업계의 최대 불황과 실물 경기 악화 속에 늘어나는 빚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부산 시민이 늘고 있다. 금융·신용 분야 전문가들은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빚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금리의 제2, 3 금융권 이용을 자제하고 신용회복위원회 등의 전문 상담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조선·해운 최대 불황 겹쳐
잉여재산 소비 한계 봉착

경남 지역 실업률 급증세
상반기 4% 훌쩍 넘길 듯

■늘어나는 서민들의 한숨

부산 시내에서 조선 기자재 업체를 운영하던 A(53) 씨는 지난 2월 23년 동안 운영해 온 회사 문을 닫았다. '사장' 대신 '실업자'가 됐다. 생계유지를 위해 조선 기자재 업체를 수소문하지만 단순 노무직을 제외하곤 이력서조차 내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직원 한 명 채용하고 월급 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안다"며 애써 위로해 본다. 하지만 당장 월말에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면 단순 노무직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가슴이 조인다.

A 씨는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조선 기자재와 자동화 부품을 생산·납품하는 사업자였다. 정규직 직원만 12명이었고, 매년 수십억 원의 매출도 올렸다. 조선·해운업계의 불황은 그런 A 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대형 조선소들의 계속되는 최저가 입찰 방식에 어쩔 수 없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일감을 '저가 수주'했다. 일감이 없으면 직원 월급을 못 주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월말이면 돌아오는 월급날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A 씨는 개인 재산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줬지만 한계에 다다르자 할 수 없이 높은 금리의 제2금융권과 사채를 끌어다 쓸 수밖에 없었다. 이자는 원금보다 많아졌고, A 씨는 어쩔 수 없이 '폐업'을 선택했다.

A 씨는 "IMF 때 부도를 맞고도 살아났지만, 정말 이번 조선 업계 불황은 생계를 이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하다"며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방법을 찾아야 될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호텔 관련 사업을 하던 B(41) 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난 빚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외에서 각종 난관에 부딪히며 사업을 밀어붙였지만 돌아온 건 2억 원이 넘는 빚밖에 없었다. 가족이 모아둔 자금에다 카드 업체의 '장기카드대출'(카드론)을 이용하다 보니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B 씨는 "빚에 쪼들리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며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여전히 빚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가 주원인

신용·금융 분야 전문가들은 부산·경남 지역이 빚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이 많은 데에는 부산 지역의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에 원인을 찾고 있다. 물가는 매년 올라가는데 양질의 직장을 가진 근로자들이 줄다 보니 잉여재산으로 버티는 시민이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득 중 부채 원금·이자 등
금융비용 40% 이상 땐 위험

신용회복위 등 상담 받아
조기에 해결책 찾아야


신용회복위원회 부산지부 관계자는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상담 받는 시민 중에는 '지금까지는 잘 버텼는데 더 이상 못 버티겠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 조선·해운 업계의 최대 불황으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경남 지역 실업률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경남 지역 실업자 수는 지난 1월 5만 2000명 수준이었으나 불황에 따른 여파가 확산되면서 2월에는 5만 8000명, 3월에는 6만 8000명으로 급증했다. 상반기 실업률은 4%를 훨씬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선 한국공인노무사회 부산지부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대기업들의 저가 수주에 따른 고통이 심각해지면서 하청 업체 근로자들의 경제 상황은 날로 피폐해지고, 실업률과 경기 상황도 최악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생계비가 부족해 해결책을 문의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소득 40~50% 금융비용은 '빨간불'

신용 분야 전문가들은 개인 소득 중 부채 원금과 이자 등 금융 비용 비율이 40%면 '신용 위험' 상태라고 설명한다. 부채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지만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경우 가계 생계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 만큼 부채 비율을 줄일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빚이 과도하게 늘어나거나 해결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렀을 경우 주저 말고 신용회복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 등 전문 기관의 상담을 받아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개인워크아웃과 개인회생·파산 신청 지원은 물론 중소기업인들의 재창업 지원과 근로자들의 일자리 매칭 지원 사업도 벌이고 있어 개인 빚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손용찬 신용회복위원회 부산지부 수석상담역은 "과도한 빚으로 인해 생계비의 통장이 지급 정지될 경우 정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면서 "부채로 문제가 있을 경우 신용회복위원회 등의 상담을 통해 해결책을 조기에 찾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한수·천영철 기자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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