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하얗게 칠했을 뿐인데 "집이 와 이리 시원하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쿨 루프'로 실내온도 5도 이상 낮아져

9일 부산 중구 보수동 산복도로 주택 옥상에서 냉방 에너지를 절감하고 도시 열섬현상을 줄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지붕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온도계가 41.2도를 가리킨다. 오전 11시. 뙤약볕이 잠시 내리쬐었을 뿐인데, 그늘 한 조각 없는 옥상은 벌써 찜통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잔뜩 발랐지만 소용없다. 얼굴은 어느새 발그레 달아오르고, 굵은 땀방울이 콧잔등을 타고 '뚝뚝' 옥상 위로 떨어진다.

지난 9일 부산 중구 보수동의 한 산복도로 마을. 어른과 학생 10여 명이 모여 페인트칠 삼매경에 빠져 있다. 서툰 붓놀림, 처음 해보는 롤러질이지만 30여 분 만에 8평 옥상이 새하얗게 물든다. 입가에도 하얀 미소가 번진다.

부산 '쿨 루프' 캠페인 첫 사업
열 반사 특수페인트 칠
고교생·자봉들 함께 구슬땀

에너지 아끼고 열섬 줄이고
실내온도 5도 이상 낮아져


이들은 이날 부산판 '쿨 루프(Cool Roof·시원한 지붕)' 캠페인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쿨 루프'(또는 '화이트 루프') 캠페인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도시 열섬현상을 줄이기 위해 건물 지붕이나 옥상을 빛과 열을 잘 반사하는 흰색으로 칠하는 운동이다. 2009년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국내에선 2014년 '10년 후 연구소'란 민간단체의 제안으로 서울에서 본격 도입됐다. 지금까지 청년 옥탑방 등 60여 가구가 '흰 모자'로 갈아 썼다. 공공기관 중에서는 창원시청사 옥상이 대표적이다.

부산판 쿨 루프 캠페인은 고등학생들이 발 벗고 나서면서 본격화했다. 지난해 가을 <적당히 벌고 잘 살기> 저자 김진선 작가의 북콘서트에서 쿨 루프를 알게 된 간승지(17·부산외고 2년) 양 등이 '10년 후 연구소'에 연락을 했고, 다시 부산의 문화소통단체 '숨'과 연결됐다.

간 양을 비롯해 자원봉사자로 나선 10여 명은 이날 보수동의 오래된 주택 옥상 2곳에 흰색 옷을 입혔다. 쿨 루프 부산 1·2호가 탄생한 자리에는 '10년 후 연구소' 조윤석 소장도 함께했다. 조 소장은 "지붕 단열처리가 제대로 안 된 주택의 경우 흰색으로 칠하기 전후 실내 온도가 5도 이상 차이가 난다"며 "열 반사율이 98%에 이르는 특수 페인트를 쓰기 때문에, 에어컨을 끄고 여름을 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열화상카메라로 측정을 해보니 흰색 옥상은 표면 온도가 31.3도인 반면 녹색 옥상은 51.5도까지 치솟아 20도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쿨 루프 2호 주인공 박행자(78·여) 씨는 "한여름이면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워서 창문을 떼고 살아야 했는데, 자기 일처럼 도와줘 너무 고맙다"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부산에서는 문화소통단체 '숨' 주도로 쿨 루프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숨' 차재근 대표는 "중구 보수동을 비롯해 영도구 도시재생사업과도 연계해 쿨 루프를 늘려나가겠다"며 "서로 이웃집을 칠해주는 품앗이 방식으로 진행하면 인건비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