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술집 가보니…] "먹고 싶은 만큼, 취향에 맞춰 혼자 즐기니 딱 좋아요"
입력 : 2016-07-10 19:09:47 수정 : 2016-07-12 12:41:19
혼자 가도 즐거운 중식당 '라라관'의 바 형태 테이블에서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나 홀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즐기는 일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1인 문화가 유독 발달한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1인 문화가 조심스레 확산 중이다. '나 홀로 고수'들이 모이는 혼밥(혼자 식사), 혼술(혼자 술 먹기)집에서 나홀로족에게 혼자 행동하는 이유에 관해 물어봤다.
■늘어나는 혼밥 전용 식당
지난 6일 오후 7시 30분께 부산 금정구 장전동 장성시장 내 라라관. 바 형식의 중식당은 나 홀로 혹은 둘이서 식사를 하러 온 젊은 손님들로 붐볐다. 2인용 좌석은 단 1개뿐이다. 가게 주인은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김윤혜(28) 대표는 "지금은 직원이 생겼지만 혼자 하는 1인 식당으로 운영할 생각으로 요리와 서빙을 쉽게 할 수 있는, 바 형식으로 가게를 만들었다"며 "그래서인지 우리 가게는 혼밥족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장전동 중식당 2인용 좌석은 1개뿐
요리와 맥주 함께 20~30대 많아
부전동 고깃집 'ㄷ'자로 테이블
자리 앞에 불판 놓여 주변 신경 안 써
장전동 나홀로 칵테일 바 'ㄴ'자 배치
메뉴판엔 '4인 이상 단체 사양' 문구
먹고픈 안주 옆 가게서 주문해 와
단골은 옆 테이블 손님 친구되기도
이 때문에 홀로 온 손님들이 부담 없이 식사하고 돌아가기 좋은 분위기가 됐다. 실제로 이날 혼자 와서 요리 1개와 맥주를 시켜 반주하고 가는 20~30대 젊은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김 대표와 대화하며 편하게 식사를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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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는 나홀로족 |
앞서 지난달 29일 방문한 부산진구 부전동 '우미가'는 혼밥족 중에서도 고수만 가능하다는 '혼자 고기를 먹는 콘셉트'의 식당이었다. 혼자 와도 부담스럽지 않게 주방을 마주 보도록 'ㄷ'자 형식으로 테이블이 세팅돼 있고, 그 앞으로 불판이 놓여 있다. 김병화(44) 대표는 "일본에서 유학할 때 혼자서 밥을 먹어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 식당이 많은 것이 인상 깊었다"며 "다만 일본과 다르게 한국 문화의 특성상 단골들은 혼자 고기를 먹으러 와서 옆 테이블 손님과 친구가 되곤 한다"고 웃었다.
이날 동행한 서일본신문 쓰루 가즈코 기자는 "일본에서도 '히토리 야키니쿠(혼자 고기 먹기)'라고 해서 혼밥에 비해 좀 더 도전적인 느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국보다 혼자서 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포동에 있는 고깃집에 혼자 갔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는데 이곳에는 편하게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스시집이나 일본 가정식을 판매하는 식당에서만 1인석을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대학가에 가면 음식 종류에 상관없이 1인석을 설치한 가게를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나 홀로 고수, 혼술·혼공하다나 홀로 문화 중 혼밥에 비해 혼술이 젊은 세대에겐 더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마이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 모니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 밖에서 혼자 술 마신 경험은 2030 영 세대보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40대 남성 38.4%, 50대 남성 40%가 혼술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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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트 칵테일바 '개인의 취함'에서 혼술을 즐기는 나홀로족의 모습. |
하지만 혼술하는 사람이 더 환영받는 술집도 생겼다. 금정구 장전동 장성시장 안에 있는 크래프트 칵테일 바 '개인의 취함'이다. 이용객의 주 연령층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 사이다. 이곳 역시 술을 만드는 공간을 중심으로 'ㄴ'자로 바 형식 테이블이 배치돼 있다. 술을 좋아해 칵테일 바를 열었다는 황지용(28) 대표의 말처럼 술을 좋아하는 나홀로족이라면 편안하게 술 한잔하고 갈 수 있는 분위기였다. 메뉴판에는 아예 '4인 이상의 단체 손님은 죄송하지만 사양한다'고 돼 있을 정도다.
조용히 술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했다. 실제로 둘이서 온 20대 여자 손님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용히 황 대표가 다가가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나 홀로 칵테일을 마시던 조정래(37·부산 사상구) 씨는 "먹고 싶은 만큼 취향에 맞게 술을 마실 수 있어서 많을 때는 1주일에 2~3번 찾을 정도로 단골이 됐다"면서 "직장 동료나 친구와 마실 때처럼 눈치 볼 필요 없이 온전히 혼자서 술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먹고 싶은 안주가 있으면 옆에 있는 하와이안 맥줏집에 가서 안주를 주문해오기도 하고, 편의점에 다녀오기도 했다. 조용히 술만 마시고 떠나는 20~30대 남성도 눈에 띄었다.
'혼공(혼자 공연 보기)'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앞선 조사에서 20대 여성은 전시회·박물관(42.4%), 콘서트(23.2%)를 혼자 봤다고 응답했고, 30대 여성도 뮤지컬·연극(31.2%)을 혼자 본 적 있다고 응답해 젊은 여성층에서 혼자 공연을 즐기는 문화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적어도 2030 영 세대에게만큼은 '혼밥', '혼술',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공'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가 왔다.
글·사진=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