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는 당신, 마음을 듣고 생각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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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부산시민 문화향유 실태 조사에서 시민 89%가 문화향유 장르로 영화 관람을 꼽았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영미 시인이 근로장려금을 받을 처지라는 뉴스도 지난 5월 언론을 달궜다. 소설가·시인으로 살아가기 버거운 세상이다.

시와 소설이 대체 어떤 이득을 주기에 꼭 읽어야 하는가, 심지어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인가?

한국인 무의식 속 '운율의 반복'
잊고 있던 내면 들여다보는 시간 

반복된 일상의 지루함 부수고
자신만의 창조적 공간 만드는 행위

1969년 등단해 시집 13권과 산문집 한 권을 낸 이시영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말한다. 책 1~2부에서 지은이는 시인 21명을 소개한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지은이가 소개한 현대시 다시 읽기의 백미는 신경림의 '목계장터'가 아닐까 싶다.

시 읽기의 즐거움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내재한 '운율적 연속성'을 되살림으로써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들어올리고, 4음보 율격의 탁월한 현재적 가치를 찾아냈다고, 지은이는 경탄한다. 옛 운율을 따오면서도 곳곳에 파격을 배치해 읽는 이의 긴장을 유발하는 것 또한 4음보 율격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산문이 아닌 시로서 이런 음악성은 읽는 즐거움을 준다.

이런 형식적 측면뿐 아니라 시는 자본주의적 일상에 젖은 인간에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하늘이 지상에 인간을 창조한 것은 두 다리로 천천히 땅 위를 걸으며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달아 자기 안의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어 스스로를 돕고 남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1996년 지용문학상 수상 소감을 지은이는 이렇게 밝힌다. 자기 안의 진리를 발견하는 일은 고요한 마음의 바닥에 가 닿는 일이다. 시인들이 이 지난한 투쟁과 기다림, 좌절을 겪으며 남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들의 여정에 편승해 각자의 마음 밑바닥에 닻을 내리는 일과 다름없다. 이 얼마나 편리하다 못해 송구하고 행복한 일인가. 이시영 지음/창비/280쪽/1만 3000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은 자주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패배로 끝난 저항이 시가 되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장소의 저항을 격려한다. 시에 힘이 있을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 질문은 시인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져져 있다. 시에 힘을 부여할지 말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서경식 일본 도쿄게이자이 대학 교수의 '시의 힘' 가운데)

시적 공간
일상은 소중하다. 요일과 날짜만 바뀌며 반복되는 일상은 그 반복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 때문에 편안하다.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인간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패턴화해 자동 인식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 뒷면엔 지루함이 있다.

건축 비평가인 이종건은 <시적 공간>에서 일상의 뒷면을 지루함 너머에서 예리하게 통찰한다. 그에 따르면 일상은 인간의 감각과 생각을 둔하게 만들어 설렘과 약동, 생명의 비약적 율동을 누그러뜨리고, 무심하고 무감하게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일상의 모든 측면이 정치 경제 문화의 그물에 여지없이 포획돼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일상을 자유롭다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 해방과 자유는 서경식이 말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을 둘러싼 공간은 끊임없이 인간이 일상을 포획하고 있는 그물을 깨닫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기획하고 짓는 건축이라는 분야도 이미 자본과 상품의 영역에 종속돼 버렸다. 자본 축적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부동산이 꼽히는 한국사회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물신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한국이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한국 전통 건축과 선비정신, 조선 시대 문인화 등을 사례로 정신과 자연, 공간을 하나의 틀에서 인식하는 우리 고유의 정신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우리의 지성사는 윤리와 진리, 윤리와 미학의 통합을 추구한 유구한 역사라는 얘기다.

인간의 마음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시와 같은 공간(건축)이 그립다. 이종건 지음/궁리/136쪽/1만 원.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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