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0기 밀집, 부울경이 위험하다] 상. 다수 호기 무엇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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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이룬 원자로, 잠재적 위험 후쿠시마 41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지난달 2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을 허가함에 따라 고리원전 일대에는 총 10기의 원전이 밀집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단일 부지에 가장 많은 원전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고리원전 반경 30㎞ 내에는 380만 명이 살고 있다. 본보는 세 차례에 걸쳐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을 긴급 진단한다.

세계 원전 70% 원자로 2기 이하 
한국은 모두 6기 이상 '밀집 지역' 
공유설비로 인한 연쇄사고 우려 

고리원전 30㎞ 내 400만 명 거주 
10기서 나오는 방사선량 엄청나 
대량 피폭 가정한 안전평가 필수

국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가 '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정보시스템(IAEA PRIS)'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5월 26일 기준으로 전 세계 188개 원전에서 444기의 원자로가 운영 중이다. 원전 부지별 원자로 밀집 현황 부문에서 원자로 2기가 위치한 부지가 77곳으로 전체 원전의 41%를 차지했고, 원전 하나만 있는 곳도 55곳으로 29%에 이른다. 6기 이상 원자로가 위치한 곳은 총 11곳(6%)으로 한국의 모든 원전(고리·한울·한빛·월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미 세계 최대 원전이 몰린 고리원전에 신고리 5·6호기까지 추가하면 얼마나 더 위험해질까?

■후쿠시마보다 41배나 위험하다

동국대 에너지 및 원자력공학부 박종운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가정했을 때 '부지발전용량(방사선 방출량)×반경 30㎞ 내 인구수'로 잠재적 위험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해 고리 부지의 원전 10기 총발전용량은 9.8GWe다. 여기에 고리원전 반경 30㎞ 인구수를 약 400만 명으로 추산해 곱하면 3.9라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2011년 지진·쓰나미로 사고가 났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잠재적 위험성을 계산하면 0.094다. 고리원전이 후쿠시마보다 41배는 더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고리 1호기 폐쇄를 고려하더라도 위험성엔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고리원전 일대의 잠재적 위험성이 큰 이유는 원전 10기가 생산하는 발전용량도 많지만, 반경 30㎞ 이내 인구가 거의 400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이내 인구는 20만 명에 불과하다. 고리원전보다 높은 인구 밀집도를 보이는 곳은 파키스탄 가라치 원전(KANUPP)으로 반경 30㎞ 이내 830만 명이 살지만, 부지에 원전 1기만 있고 발전용량이 100MW대에 불과하다.

■다수 호기, 무엇이 위험한가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재해로 인한 다수 호기 연쇄 타격 △호기 사이 공유설비 △사용후핵연료 포화 등의 관점에서 원전을 욱여넣을수록 위험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쓰나미라는 공통 원인에 때문에 3개의 원전 노심이 녹아 내렸고(멜트다운), 원전 4개에서는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다수 호기 리스크 평가 규제지침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를 보면 국내에서도 2000년 이후부터 자연재해 등이 다수 호기에 영향을 준 사고는 총 26건에 이른다. 특히 연구서는 "다수 호기 간 공유하고 있는 계통과 구조물이 있다면 다수 호기 사건의 가능성은 증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KINS가 같은 연구서에서 밝힌 고리원전 공유설비 수는 △부지 공유설비 (고리 1~4호기) 3개 △고리1·2호기 5개 △고리3·4호기 8개 △신고리 1·2호기 19개 등이다.

다수 호기가 연쇄적 사고를 일으킬 때 고리원전 수조에 쌓여 있는 5000다발 이상의 사용후핵연료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박종운 교수는 "사고가 발생해 냉각수가 고갈되면 사용후핵연료에서 방사성 물질이 공중으로 흩어질 수 있다"면서 "사용후핵연료의 위험도도 원자로와 마찬가지로 동일 부지 내 저장조 수, 주변 인구에 따라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는 안전관련 설비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심사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저장 용량과 안전성, 구조 설계, 냉각 및 정화 등의 설계 적합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 제대로 됐나

원안위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심사 과정에서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와 관련, "국제 기준과 국내 법규에 따라 엄격하게 수행했다"면서 "특히 설비 공유를 금지했고, 다수 호기가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재해로부터 안전한지 집중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현재 원전 안전관리가 개별 호기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를 단순 국제 기준대로 따르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다수 호기 사고 때 다량의 방사선 피폭을 가정한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고리원전처럼 원전 6기 이상을 한 부지에 몰아넣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보니 다수 호기 관련 PSA 방법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다수 호기 PSA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구개발을 통해 평가방법론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사무처장은 "캐나다의 경우 2014년부터 다수 호기 PSA를 지침에 포함시켜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면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에서도 다수 호기 PSA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연구를 추진하기는커녕 원전 규제를 완화하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이자영·황석하·안준영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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