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도권은 원치 않는 안전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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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 동의과학대 총장

우리나라에는 독특한 '정(情)' 문화가 뿌리 깊다. 너와 나를 분명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우리'로 서로를 함께 묶는다. '내'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버지란 말이 입에 더 잘 달라붙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턴가 우리는 내 아버지와 네 아버지로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지역과 '너'의 지역으로 나누어 다투고 있고 서로 간의 경쟁을 중재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판정인은 향후 정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나머지 엉뚱한 결정을 내리는 촌극을 빚고 있다.

애시 당초 신공항 문제는 김해공항 확장안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기에 공군의 군사공항으로 만든 김해공항은 적의 포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북쪽으로 산이 가리고 있어 항공기 착륙에 큰 위험요소를 안고 있었다. 또한 공항 주위 민가들의 소음 피해로 인해 24시간 운영되는 허브 공항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이에 부산시는 지난 1980년대부터 신공항 입지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항만·공항·철도를 연계한 트라이 포트(Tri-Port) 구축을 통해 동북아 관문 도시로의 도약 이란 원대한 플랜을 그리게 됐다. 이것이 신항만과 연계한 물류거점 활용과 해안 매립지로서의 안정성을 지닌 가덕도를 신공항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던 차에 대구를 비롯한 4개 시·도가 밀양을 후보지로 내세워 부산시의 플랜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정부는 2011년 신공항을 백지화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졸속적으로 마무리 지었고, 5년 뒤인 2016년 신공항 논쟁이 또다시 불거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지역 간 유치전은 전보다 과열됐고, 국익을 위한 건설적 논의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는 또다시 지난번의 실수를 반복하는 우를 범했다.

수도권을 필두로 한 정·재계에서는 이러한 결정을 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역 이기주의 속에서 중앙정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평하였다. 중앙지들은 앞다퉈 영남권 시·도들을 지역 할거주의에 함몰, 더 많은 국가 예산을 끌어모으기 위해 서로를 치열하게 헐뜯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최근 유럽의 브렉시트(Brexit) 사태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기시감은 결국 여기에 있다.

수도권 중심의 대한민국의 실태를 풍자하는 '서울공화국'이란 말이 있다. 이는 지방의 푸념 섞인 볼멘소리가 아니라, 수도권 과밀화로 인해 초래된 자원의 비효율을 꼬집는 따가운 비판임을 알아야 한다. 지방의 SOC·인프라망 부족으로 중소기업들마저도 수도권으로 이주하고 있고, 이런 수도권 내 과포화는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낳을 뿐만 아니라 국토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아직 울분이 가시지 않은 부산시민에게 신고리 원전 5·6호기 증설 허가를 내던졌다. 오히려 이것이 수도권의 횡포와 이기주의가 아닌가?

이번 신공항 사태는 또 정부의 무책임한 자세가 얼마나 지역과 국민을 힘들게 만드는지 느끼게 한다. 정치적 파장에 더 무게를 실은 정부의 국정철학의 피해자는 바로 국민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석연치 않은 신공항 입지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지역 간 갈등과 깊은 상처의 골을 이제 '우리'라는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치유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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