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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전쟁을 바라보는 두 시선

한민족은 왜 지금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가? 1948년 정부 수립부터 치면 68년, 해방공간(1945~1948년)을 포함하면 71년이다.

세계인들의 기억 속에 '한국' 하면 떠오르는 가장 첫 단어는 아직도 '전쟁'이다. '통일' 혹은 '해방'을 명분으로 벌였던 전쟁에서 죽어간 목숨이 450만이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잃고, 죽고 다치고, 억울한 누명을 썼던 세대에게는 70년 세월도 아무런 치유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후 세대라 해도 한국의 분단 현실은 삶의 조건 한편을 무겁게 짓누른다.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겨우 목숨을 지킨 사람들, 전후 반도의 반쪽 땅에서 자란 사람들의 상대국에 대한 원망과 갈등이 분단 고착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분단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그래서 한국전쟁을 냉철하게 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외부인의 시각, 그것도 우리와 비슷한 분단 경험을 가진 나라 사람이라면 더 참고할 만하다.

독일 전후세대 역사학자인 베른트 슈퇴버의 '한국전쟁'은 그래서 주목해야 할 책이다.

일제 식민지를 어떻게 겪었는지, 2차 세계대전 직후 일제 잔재를 얼마나 청산했는지, 해방공간에서 자주적으로 싹트던 민주공화국 준비 움직임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책은 전쟁 전 한국사의 맥락을 담담하게 훑어 나간다. '남한을 해방시키겠다'는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하는 스탈린,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했던 미국의 속절없는 후퇴, 연합군 투입 이후의 반격, 중국 인민해방군의 북한 지원, 정전 협정.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런 전쟁 과정 속에 워싱턴과 모스크바, 베이징의 정치적 계산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신랄하게 드러난다.

부동항을 확보하며 미국의 대리인 일본을 곧바로 마주할 수 있는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한 모스크바에 비해, 유럽을 공산주의로부터 지키는 데 치중한 워싱턴의 안목은 떨어졌다. 이런 판단 착오는 뒤늦은 강경대응을 초래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는 중공군의 유입을 막고 향후 수십 년간 교류를 막기 위해 압록강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전을 우려한 워싱턴의 만류로 맥아더가 사임함으로써 다행히 한반도에 핵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이와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미군과 아군의 만행도 기록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이 사회적 약자들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호전적인 주장을 펴는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은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미리 확보한 정보로 몰래 피란길에 먼저 오른다.

전쟁 이후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미국 일본 소련 중국 유럽, 모두 급격한 경제발전이라는 이득을 챙긴다. 전장의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라면, 국제적 관점에서 전쟁 피해자는 결국 약소국인 전쟁 당사국이다.

베른트 슈퇴버 지음/황은미 옮김/여문책/324쪽/1만 7천 원.

한국전쟁의 가장 큰 손실이라 할 분단을 짊어진 우리에게 어떤 해법이 있을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은 '정세현의 외교토크'에서 현 정부의 상호주의적 대북정책과 우방 의존적 외교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이룬 독일에 비해 한국은 동족 국가 간 신뢰와 교류가 너무 부족하다.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위해 벼랑 끝 전술의 극한을 보여 주는 북한, 그런 북에 대해 마지막 남은 교류의 등불 개성공단을 완전히 끊어 버리며 고사작전을 주도하는 남한. 분단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주변 열강의 기득권을 이대로는 깰 수 없다는 분석이다.

같은 보수 정권인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처럼 남북화해와 교류를 우선으로 하며 주변국을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은 핵 실험, 수소폭탄 실험에 이어 지난 22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무수단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3천500㎞ 떨어진 괌 미군기지를 사정권에 둔 것이다. 통일은 고사하고 한국이 다시 전장이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미·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의 외교 정책은 외교력 약화를 자초하고 있다. 정권이 교체돼도 화해정책을 계승했던 서독의 전례를 곱씹어야 한다. 분단을 당리당략에 활용한다는 오명을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세현 지음/서해문집/288쪽/1만 5천 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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