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검은 까마귀, 흰 까마귀
/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우리 근대문학 초기 문인들은 대개 신문, 잡지사의 기자직을 겸업했다. 춘원 이광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금동 김동인은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거쳤다. 횡보 염상섭도 잡지 '동명' 기자 출신이다. 신문학 개척자이자 사회의 목탁으로서의 기개로 젊은 그들은 종로 바닥의 술판을 휘저으며 갖은 기행과 명정의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전통은 해방과 전후에도 이어져 선우휘나 이병주 같은 걸출한 작가 겸 기자를 배출했다. 전업 작가에 비해 작품의 수는 적지만 정치와 사회의 내면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기에 그들이 놀린 붓질의 톤과 무게는 짙고 육중하다.
기자 겸직 문인들 근대문학 개척
김성한, '바비도' '이성계'로 성가
거대담화 왜소하게 한 문학의 힘
기자 김성한은 소설 '바비도'로 성가를 올렸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번역한 솜씨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소세키는 영문학자이자 한학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소설 속에서 동서양의 고사와 난해한 한문 구절을 종횡무진 구사했기 때문이다. 취재의 판을 중세 영국에까지 넓혀,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화형당한 재봉공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봉건적 질곡을 고발한 '바비도'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동인문학상 첫 번째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는 작가로서의 역량이 한창일 때 역사로 관심을 넓혔는데, 이때 발표한 대하소설 '이성계'는 그 품격과 깊이에서 당시 대중의 인기를 누리던 월탄의 궁정대하소설과는 격이 다른 것으로, 어찌 보면 최근 김훈의 '남한산성'이 보여 준 남다른 격조와 비견할 만하다. 인위적으로 규율된 한 집단의 통시적 삶의 기록인 민족사, 혹은 그 집단에게 있어 역사적 당위나 이념이라고 여겨진 언행들이 지닌 허무맹랑함과 덧없음을 허구를 통해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 말 공민왕 때 촉망 받는 젊은 무장 이성계를 일약 국가적 스타로 만든 것은 북변에서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 만호 박의를 정벌한 일이었다. 사실 박의의 반란의 동기나 전말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고려사' 공민왕 10년 10월 조에 두 줄짜리 매우 간략한 기사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그의 인간됨과 반란에 대해 사뭇 동정적이다. 혈기왕성한 젊은 상장군 이성계는 늙은 장수 박의를 사지에 몰아넣고 꾸짖는다. "네 이놈! 네가 저지른 죄를 후회하지 않느냐?" 피투성이 패장이 애인을 안고 내뱉는 독백은 우리 가슴을 친다. "그래, 후회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햄릿'보다 '맥베스'를 우위에 두는 비평가가 많은 이유는, 작가가 주인공을 권력욕에 사로잡혀 군주를 살해한 역적으로만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 살인마의 흉중에 도사린 인간적 고뇌와 연약함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적진으로 단신 뛰어드는 맥베스의 마지막 결단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사에 있어 소우주적인 선악의 논리를 넘는 대우주적인 허무의지의 존재를 깨닫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김성한은 박의를 고려의 맥베스로 다룸으로써 역사, 정치, 이념 같은 거대담화를 왜소한 것으로 만든다. 또한 장차 쿠데타로 한 왕조를 교체할 이성계라는 인간, 그리고 정치권력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한 것이다.
감히 고백하거니와, 고전 공부를 직업 삼아 그 문턱을 몇 십 년 헤매었건만, 지금 난 역사는 물론이려니와 오늘의 현실에 있어 어느 놈이 검은 까마귀고 어느 놈이 흰 까마귀인지, 누가 공자님이고 누가 도척놈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듯 선악의 분별을 초월한 경지라면 정말 다행이련만, 당초 몽롱한 두뇌에다 그 복잡다기한 인간사의 갈래를 분류하고 자신만의 관견을 세우겠다는 목표 자체가 경상도 말로 "택도 없는 짓"이었다. 그저 닥터 파우스트의 비탄을 패러디하고 핫바지 방귀 새듯 슬그머니 사라질 수밖에. "아아! 난 문학도 역사도 열심히 공부하는 체했다. 그러나 지금 난 이런 등신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