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면서 가해자 되는 그 일그러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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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하면 치를 떨더니 결국 그거 시비하다 갔네."('물구나무 서는 아이' 중)

소설가 조갑상(66·사진) 경성대 명예교수가 최근 역사 왜곡과 관련된 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놨다. '물구나무 서는 아이'(5·7문학무크 다시 지역이다), '병산읍지 편찬약사'(창작과 비평 여름호) 두 작품.

소설가 조갑상 명예교수
'보도연맹' 사건 소재
단편소설 2편 '주목'

물구나무 서는 아이
맹목·폭력적 반공 교육
뒤틀린 인생 여정 그려

병산읍지 편찬약사
제3자들의 역사 왜곡
지식인의 무력함 등 담아


'물구나무 서는 아이'는 1950년대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주인공으로, 아들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인생 전체를 비틀었는지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김영호가 가진 아버지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담임교사의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반공교육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왜곡된다.

유족이면서도 가해자 편에 서서 '종북몰이'에 나서다가 결국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그러진 자화상 아닐까. 조 소설가는 "부친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회피하려는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했다"며 "희생자이면서도 반대편에 서려는 주인공의 심리는 우리 현실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역사 국정교과서와 관련해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책머리 말처럼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 제3자들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왜곡시키는지를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작품은 '병산의 어제와 오늘' 중 역사 편의 한 꼭지인 '해방정국과 6·25 전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도연맹'과 관련된 상세한 설명이 지나치다고 토를 다는 기업인 출신 편찬위원장의 지적에 편집위원장, 부위원장은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다. 역사 부문 집필을 맡은 이 교수 역시 책에 집필진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고 '발을 빼는' 것으로 소심한 마무리를 한다.

기업인이 편찬위원장에 앉고 전문가가 배제되는 등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편찬위원회 그리고 지식인의 무기력함.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과 궤를 같이한다.

조 소설가는 "보도연맹사건은 전쟁 기간 중 서부경남에선 흔하게 일어났던 일로, 어렸을 적 제사 때 어른들이 쉬쉬하며 나누는 얘기를 들어왔다"며 "두 작품 모두 보도연맹이 소재가 됐지만 보도연맹 자체보다는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떤 억압을 받고 망가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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