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 먹고 애 봐주고… 평상이 만든 '골목(사상로 269번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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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 먹고 애 봐주고…동네 '정' 부활

케이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사람들은 이웃끼리 식사 준비도 함께 하고 반찬도 나눠 먹었다. 그 '쌍문동'이 그립다면 사상구 사상로 269번길(덕포동)을 한 번 찾아가 보자.

"재혁이 할머니 밥 먹으러 와. 올 때 쌈장 좀 가져오고~."

"밥 먹자"라는 소리가 골목에 퍼지자 목욕탕, 쌀집, 가정집, 미용실 등에서 10명이 넘는 사람이 하나둘 모여든다.

3년 전 평상 놓은 후 변화
사라졌던 골목길 '정' 부활

목욕탕 아줌마·쌀집 아저씨
이웃주민 10여 명 오순도순
부산판 '응답하라 1988'

마을 독거노인 끼니도 챙겨


손에는 된장찌개, 상추, 총각김치 등 갖은 반찬이 들려 있다. 모여든 사람들은 이웃주민이 대부분인데, 외부에 사는 사람도 두 명 끼어 있다. 이곳에 일터가 있어 일주일에 4~5번은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는다. 사라진 줄 알았던 진귀한 풍경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이 동네는 이런 게 아직 남아있네"라며 부러운 듯 쳐다본다.

이들이 함께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목욕탕에서 일하던 김인숙(57·여) 씨가 "평상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 말에 3명의 주민이 함께 플라스틱 팰릿(pallet·지게차가 물건을 운반할 때 사용하는 받침대)를 이용해 간이 평상을 만들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평상은 '골목의 기적'을 만들었다. 반찬을 들고 오는 이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어느새 10명에 달했다. 상인들이 많다 보니 구성원은 가끔 바뀌지만 분위기에 동화돼 반찬을 평상으로 들고 날랐다. 평상의 수도 이제 3개가 됐다. 인원이 늘어 반찬을 다 놓기도 부족해지다 보니 평상은 '식탁'이 됐다. 처음 간이 평상은 도둑맞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간이 식탁을 평상이라고 부른다. '평상'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란다.

드라마에 나오는 '쌍문동 주민'처럼 지내는 이들은 가게를 비우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가게가 비더라도 옆에서 다 챙겨주기 때문이다. 손자들은 사실상 '공동 육아'로 돌보고 있다. 김인숙 씨의 손자 서재혁(4) 군은 어린이집을 다녀와 배가 고프면 김 씨를 찾지 않고 '짹짹이 할아버지' 집으로 가 제 집인 양 달걀말이를 달라고 한다. '짹짹이 할아버지'는 설비업을 하면서 새를 키우는 장병식(57) 씨에게 서 군이 붙인 애칭이다. 고향에서 명이나물, 감자 등이 택배로 오면 모두 집이 아니라 가게에서 받는다. 나눠 먹기 위해서다.

끼니를 함께해 '식구'가 된 이들은 최근 좋은 일도 함께한다. 바로 독거노인 3명을 평상에 초대하는 것이다. 장 씨는 "함께 밥을 먹고, 혹시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없는지 챙겨보는 것, 이런 게 원래 이웃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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