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의 '곡성'에 들어갔다 완전히 현혹됐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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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의 포스터에는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적혀 있지만, 도무지 현혹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황해’(2010)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나홍진 감독의 영화적 언어는 끊임없이 대중을 유혹했고, 여러 갈래의 해석을 낳았다. 데뷔작 ‘추격자’(2008)와 ‘황해’를 통해 경험했던 그 지독한 나홍진이기에 기대됐던 지점들과 그런 나홍진이라서 예상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얽히고설켜 무시무시한 ‘곡성’의 세계를 완성했고, 이에 현혹됐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볼 순 없지만, 이런 대중의 움직임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다.
 
Q.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어떻게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홍진 감독 : 심사하시는 분도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의 분위기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를) 줘도 되는 건가 생각하지 않았을까. (웃음) 직접적인 묘사 대신 미술적으로 처리했고,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현실성이 좀 떨어지는 등 이런저런 요소들이 그렇게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가능성은 5% 정도였는데, 정말 그렇게 나와 깜짝 놀랐다.
 
Q. 그런데 듣기론, 처음부터 ‘15세 이상 관람가’를 만들겠다고 주위에 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홍진 감독 : 청소년 관람불가를 생각했다. 다만,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잔혹하고 힘들어할 만한 장면들을 통해 에너지를 뺏지 말자는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Q. 캐스팅도 궁금하다. 왜 곽도원이었나.
나홍진 감독 : 트리트먼트가 나왔을 때 이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는 주인공이 누굴까, 많은 배우를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그중에 곽도원 선배가 있었고, 그 사람을 놓고 구체화하면 제일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에는 체격과 체형은 물론 일상에서의 모습 등이 포함됐다. 제일 중요한 건 ‘황해’ 때 일을 해봤던 경험이다. 당시 미세한 것이든, 큰 것이든 주문할 때마다 잘 표현해주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이 배우가 어떤 창의력을 가지고 얼마만큼의 세밀한 계산을 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인지 궁금했다. 이번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등장하고, 다양한 감정과 상황에서 리액션 혹은 액션을 해야 하는데, 섬세하게 연기 구분을 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봤다. 주연을 해본 적이 없다 해도 전체를 아우르는 그림은 전작을 통해 김윤석 선배한테 많이 배웠다. 곽도원 선배가 큰 숲을 설사 볼 수 없더라도 그 가르침으로 가이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외지인 설정도 궁금하다. 외국 배우가 하면 당연히 도드라지는 역할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일본인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나홍진 감독 : 마을에 뭔가 들어오는데 그게 확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은근히 침투해서 세포를 감염시키는 공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외모로 잠입한 존재가 어느 순간 조금씩 조금씩 이질감을 나타내고, 결국엔 우리와 정말 다른 존재로 비치길 바랐다. 그런 방식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배우를 고민했을 때 일본인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Q. 그렇다면 많은 일본 배우 중에 왜 쿠니무라 준을 섭외하게 됐나.
나홍진 감독 :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아웃 레이지’를 봤는데, 하나의 컷 안에서 몇 번의 사람이 바뀌는, 마치 변검하는 것 같은 연기를 봤다. 장난스러우면서 기괴하며 정색하는 모습 등 다양한 얼굴의 연기가 한 컷 안에서 변화하는 것을 보고, 그분이 연기해주시면 희한한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모시고자 했다. 우리 영화에서 외지인이 그렇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중간에는 긴가민가 싶고, 마지막에는 강렬하다. 일본 배우 중에 이렇게 폭이 넓은 인물을 순식간에 척척 해나갈 수 있는 배우는 쿠니무라 준이 최고다.
 
Q. 섭외 과정은 어땠나.
나홍진 감독 : 전작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그래서 영화 관계자분들은 어느 정도 나를 알고 있다. ‘추격자’는 일본의 감독들이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쿠니무라 준도 나를 알고 있었다.
 
Q. 엉뚱한 생각일 수 있지만, 일본인을 악마의 축으로 그려냈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한일 관계가 있으니까. 그런 점을 의식한 건가.
나홍진 감독 : 그런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다. 쿠니무나 준도 왜 일본인이냐고 묻더라. 물론 그런 오해 때문은 아니고, 확신을 얻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도쿄로 넘어가 이런저런 이유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설명했다. 일단 해주기로는 했는데, 꽤 오랜 시간 미팅이었음에도 더 깊이 있게, 정확하게 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주길 바라더라. 정확한 의도를 알고, 정확한 연기를 하기 위해 소소한 이야기까지 듣고 싶어 했다.
 

Q. 곽도원 등 배우들 말이 ‘현장에서 배우들이 느끼는 즉흥적인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왠지 꼼꼼하고 정확하게 ‘지시’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좀 의외였다.
나홍진 감독 : 배우가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연기하면 안 된다. 동일한 글을 놓고 해석이 다르면 나를 의심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저 배우의 해석이 옳다고 여겨지면 바로 확인한다. 근데 아닐 경우엔 배우의 해석에 정면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연기를 배우지 않았지만, 해석을 달리했는데 감독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잘 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할 일은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게 그 길을 가이드하는 거다. 그래서 직접적인 주문보다 첫 번째 해석을 제일 중요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해석이 아무리 고민해도 옳지 않을 땐 배우들이 본인의 의지로 방향을 틀 수 있게 유도한다. 
 
Q. 상충할 때는 없나
나홍진 감독 : 있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달라는 분도 있다. 모든 사람의 스타일이 다르다. 사람마다 매너를 달리해야겠더라.
 
Q. 이야기의 흐름도 흥미롭다. 전작인 ‘추격자’ ‘황해’가 일방적으로 몰아쳤다면, 이번엔 초중반까지는 의외로 웃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좀비도 그렇고. 나홍진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나홍진 감독 : 맞다. 나홍진 영환데. (웃음). 초반은 코미디다. 진짜 상업영화 찍는다는 생각으로, 배우에게도 코미디 연기를 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배우도 똑같이 ‘이거 나홍진 영화인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처음에는 코믹한 대사가 있는데도 진지하게 하더라. 이렇게 한 건 15세를 받겠다는 목적은 아니었고, 쓸데없는 자극이나 묘사는 영화를 오히려 헤칠 것 같았다. 전작에서는 그런 자극적인 것에 의해 추진력을 얻었다면, 이번에는 살짝 웃으면서 이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Q. 감독은 이 영화를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대중도 이렇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나.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 않나.
나홍진 감독 :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플롯이 있다. 다만 그렇게 말했던 건 표면적인 플롯이 바로 그것이다. 연속해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나중엔 내 딸이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을 위해 방어하게 되고. 그런 표면적 플롯을 말하는 거다. 
 
Q. 한국적인 토속 신앙과 서양의 퇴마 등이 얽혀 있다. 이 코드를 외국인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곡성’을 투자한 폭스(폭스인터내셔널프러덕션) 관계자는 뭐라던가. (인터뷰는 칸 영화제 이전에 진행됐다.)
나홍진 감독 : 자막 없이 영화를 보더라. 시나리오를 봤다면서. 그런데도 ‘최고’라고 하더라. (웃음)
 
Q. 더불어 폭스와 작업하면서 다른 점은 있었나.
나홍진 감독 : 똑같다. 조율하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익숙해지니까 ‘알아서 해’더라.
 
Q.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곽도원이 연기한 종구를 보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데도 느긋하다. 섹스신도 마찬가지고. 그러다가 자신에게 막상 불행한 일이 닥치니까 적극적인 것을 넘어 물불 안 가리지 않나.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참 무서웠다.
나홍진 감독 : 그걸 표현하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렇게 봐도 될 것 같다. 주인공의 처음과 마지막, 그 변화의 폭이 최대화할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이기적인 모습은 후반에 담겨 있다. 경찰이 해악을 가하고, 죄를 저지른다. 관객은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종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현장을 어떻게,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인가, 이런 것도 생각해보고 싶었던 지점이긴 하다. 또 아비로서 당연한 마음과 이기가 되는 행동의 충돌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원죄가 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도 있다. 
 

Q. ‘곡성’이 지닌 이야기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나홍진 감독 : 나이가 들면서 장례식장 갈 일이 많다. 어느 날 장례식장에 앉아서 ‘왜 저렇게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시작됐던 것 같다. 도대체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는데, 왜 이 사람인지 말이다. 거기에서 생각이 확장됐다. 한 존재가 소멸했는데, 이유가 없다는 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게 아닐까. 인간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큰 문제라고 봤다. 더 나아가 ‘신’으로 가면서 신은 선한가 또는 악한가, 실재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왜 방관하는지 등 여러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영화는 그 질문을 하면서 끝나는 영화다. 동시에 이 영화가 장르적으로 독창성 있고, 반짝반짝한 영화가 되길 바랐다. 또 실화를 모티브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그냥 쓰겠다고 마음먹었고, 장르적인 욕심을 부렸다.
 
Q. 초자연적 현상을 겪는 사람의 감정이나 그 진폭은 쉽게 알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그런 것들이 과해서도, 부족해서도 안 된다.
나홍진 감독 : 어려운 문제다. 밸런스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신들은 너무 늦게 찍어도 안 된다. 전체 일정 중에 적절한 시점에 있어야 한다. 영화가 중반쯤 되면, 꼭 배우들과 같이 본다. 본인이 어떤 연기를 해왔는지 밸런스를 체크하라는 의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건 영화 안에서 상대적이다. 지금까지 찍어왔던 것을 토대로, 앞을 짐작하면서 밸런스를 유지한다. 물론 감으로 하는 거라 매번 보면서 스스로 의심하면서 계속 상의하고, 얘기해나간다.
 
Q. 듣기론 또 다른 엔딩 버전이 있다고 들었다.
나홍진 감독 : 일종의 보험 같은 장면이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더 가면 넘친다고 봤는데 우려하시는 분이 많았다. 은유나 메시지, 의도에 대한 게 아니라 장르적 또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 등 표면적인 우려였다. 그래서 보험으로 찍어놓고, 그걸 붙여서 보여줬는데 ‘감독님 말씀이 맞다’고 하더라. 지금의 엔딩으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하고 있다. 다만 전달의 문제인데, 애초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 분명 일반적인 엔딩은 아니지만, 제일 컸던 건 아빠의 얼굴에서 끝나는 게 바르다고 봤다. 여지가 없는 선택이다. 보통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면, 초자연적인 현상의 피해자가 퇴마사 등에 도움을 청하면서 바통이 넘어간다. 그러면서 결국 그들의 엑소시즘으로 초점이 넘어가고, 가족들은 백그라운드로 물러나게 된다. ‘곡성’은 그런 영화가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종구 얼굴에서 끝나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Q. 여러 의미로 항상 ‘고생’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것 같다.
나홍진 감독 : 최고의 아티스트를 모셔왔고, 어렵게 읍소해서 모셔오기도 했다. 정말 쟁쟁하신, 인생을 연기에 투자하신 대배우도 계신다. 200명 가까이 되는 아티스트를 모셔온 거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뭉쳤다. 뒷동산에 소풍 가는 의미가 아니다. 모두가 마찬가지겠지만, 영화 역사에 남을 한편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모였다. 그 초심, 아닐까.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후회할 때도 있다. 심지어 이번 영화는 폐렴에 걸려 입원한 상태에서 몰래 빠져나와 촬영해야했다. 도원 형은 얼굴이 부을 정도로 힘들게 해왔고, 스태프들도 산이고 들이고 비 오는 날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참여한 모두가 대단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진=강민지 기자, 폭스인터내셔널프러덕션 제공
 
황성운 기자 jab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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