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묻지마 범죄'와 여성혐오 풍토에 속수무책인 정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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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당한 20대 여성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주말 내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다. 서울에서 시작된 추모 물결이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 이르기까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것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대역 앞, 서면 쥬디스태화 인근, 부산대 등 대학가에서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이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헌화를 하거나 묵념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22일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결론 내렸다. 범인이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을 보였지만 경찰은 "혐오범죄와 정신질환 범죄는 구분해 정의를 내려야 하는데 이 경우는 정신질환 범죄"라며 "혐오범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고, 정신질환 범죄는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특정 집단에 대한 피해망상과 환청 등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찰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이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의 추모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 혐오 정서가 꽃다운 나이의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거나 "강남역은 매우 먼 곳이지만 여성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폭력은 지역과 관계없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게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에 대한 불안감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정부는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에 대한 치료를 의무화하는 등 '묻지마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한편 여성혐오 풍토 또한 '강 건너 불'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80%가 여성인 현실에서 여성의 불안 해소는 '발등의 불'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 여성 비하와 혐오를 담은 글이 넘쳐나는 현실은 결코 묵과할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 의견부터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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