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현대重 시추선 울산 앞바다 떠도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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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만 7천억원…저유가에 3자 매각도 난망

현대중공업이 노르웨이 선주사로부터 계약을 취소당한 시추선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시추선인 '딥워터 노틸러스'호. 현대중공업 제공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울산 앞바다에 거대한 시추선이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최근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완공한 반잠수식 시추선으로, 길이 123m, 너비 96m로 반잠수식 시추선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에베레스트 산(8,848m)보다 깊은 수심 1만 2천200m까지 구멍을 내고 '검은 황금'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몸값은 약 7천26억 원.

그러나 이 시추선은 주인을 찾지 못해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무명의 시추선'으로 울산 앞바다를 떠돌고 있다. 7천억 대의 '귀하신 골리앗 시추선'이 왜 애물단지가 됐을까.

길이 123m 규모 '반잠수식'
지난달 완공 몸값만 7천억 원
선주사 계약 해지 인도 하세월
저유가에 3자 매각도 어려워

시추선의 비극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 노르웨이 선주사인 프레드 올센에너지로부터 6억 2천만 달러에 반잠수식 시추선을 수주했다. 당시 현대중은 설계부터 시운전까지 모든 과정을 맡아 군산조선소에서 건조에 나섰다. 북극해의 추운 날씨와 강한 파도에 견딜 수 있도록 세계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노르웨이 해양산업 표준(NORSOK)'을 따랐다.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을 점령할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주사는 어떤 이유인지 자주 설계 변경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시추선 인도 시점도 애초 지난해 3월에서 12월로 연기됐다.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만 1억 6천700만 달러가 들었다.

문제는 선주사가 인도 지연을 이유로 추가 비용 지급을 거절한 것. 결국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0월 런던해사중재협회(LMAA)에 중재 신청을 냈다. 이에 반발한 선주사는 계약 해지로 맞섰다. 여기다 선수금 1억 8천만 달러와 함께 이자 지급도 요구했다.

현대중공업은 추가 비용 보전은커녕 계약 취소로 대규모 손실만 떠안게 될 처지에 놓였다. LMAA의 중재 결과도 감감무소식이다. 현대중 관계자는 "국제분쟁은 시일이 오래 걸리는데다 유지비 문제도 있어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라며 "다른 오일매니저사에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는 유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상 7천억대의 시추선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레드 올센 측도 표면상 인도 지연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했으나, 이면엔 유가 하락으로 시추선이 더는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6일 노르웨이 총리가 현대중공업을 방문해 이목을 끌었으나, 이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었다. 장기 불황과 노사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현재 모습을 대변하듯 이 무명의 시추선이 기약 없는 동해 표류를 언제 마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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