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 이야기 - 만드는 법] 색색의 꽃잎마다 봄의 향과 맛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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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꽃차는 눈, 코, 입으로 마신다고 한다. 덖음과 식힘이 반복되는 온종일의 수고로움을 상쇄할 만큼 아름답게 우러난 각종 꽃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사진 위쪽은 팬지꽃, 생강나무꽃, 목련꽃, 동백꽃을 덖은 모습이다. 아래쪽은 참쑥, 도라지꽃, 복숭아꽃, 금계국, 생강나무꽃, 레드비트, 맨드라미꽃, 홍화꽃 등을 우린 차들. 김경현 기자 view@

부산 사하구 감천마을꽃차문화원 실습실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생강 향이 코끝을 감쌌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점순이와 내가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힌 장면에 등장하는 노란 생강나무꽃이 싸리 채반에 가득 담겨 있다. 강원도에선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으로 생강나무를 생각하고 동백꽃으로 부르기도 한다더니 과연 매향에 버금가는 향기였다. 생강나무꽃 옆 채반에는 추운 겨울을 오롯이 견뎌낸 애기동백꽃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나는 봄이로소이다'를 온몸으로 들려주는 듯한 두 꽃 사이에서 김유정을 떠올렸고, 이 기억이 봄을 지나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도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길 바라면서 향기로운 꽃차 만들기를 시작했다.

동백·생강나무·팬지 꽃…
향은 덖으면서 은은해지고
색상은 더 진하게 나와

독 있는 꽃은 꽃술 제거하고
수분·두께 따라 덖는 방법 달라

덖고 식히고 또 덖고 식히고…
생각 밖의 노동·인내 필요

■향기 가득한 꽃차 제다 법


전문가에 따라서는 꽃잎이 얇은 매화, 산수유, 개나리와 같은 봄꽃은 생꽃 그대로 우려 마시거나 자연에서 잘 말리기만 해도 된다고 하는데 황순자 원장은 덖음 꽃차를 강조했다.

"꽃의 향은 덖음 과정에서 은은해지고, 색상은 더 진하게 나오기 때문에 이 제다 법을 이용하는 겁니다. 덖음 꽃차는 꽃이 가지고 있는 수분을 조절하면서 건조되기 때문에 맛, 향, 약성 모두를 온전하게 가지고 있게 해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시간이 지나고 해가 갈수록 맛과 향이 더 깊어지고 좋아지는 것이 덖음 꽃차 특징 중 하나입니다."

건조기에 넣어서 말리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덖음 꽃차 제다에서 중요한 것은 싱싱한 꽃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찌는 꽃차의 경우 영양 손실이 우려되고, 그냥 말리면 시래기처럼 되며, 열풍 건조를 하면 꽃 자체의 수분이 날아가 버려서 색과 향기, 맛이 살아 있지 않게 됩니다."

꽃차를 만들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꽃의 독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꽃을 차로 덖기 전 꽃술에 독이 있는 꽃은 꽃술을 제거하고 식용 가능한 꽃인지 잘 알아야 하며, 건강을 생각한 꽃차를 만들려면 정성스런 마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열에 의한 꽃의 갈변 성질이나 꽃잎의 수분 함량, 꽃잎의 두께에 따라 덖음 방법을 달리 하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하면서 터득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덖음 꽃차 실제 만들기

실습에 들어갔다. 동백꽃부터 다듬었다. 동백은 잎이 두껍고 수분을 많이 머금어 꽃봉오리를 따서 상온에서 한나절 정도 둔 뒤 봉오리가 살짝 벌어지게 되면 꽃받침을 떼고 꽃잎을 한 장씩 펼치라고 했다. 꽃잎을 펼칠 때도 너무 힘을 주게 되면 상처가 나거나 꽃잎이 떨어져 나갈 수도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 동백꽃은 지혈 작용과 혈액 순환의 효능이 있다고 했다.

가정에선 덖음 솥 대신 피자 팬을 사용하면 된다. 온도를 가장 낮게(F지점) 올렸다가 램프가 꺼지면 전원을 끄고, 두꺼운 창호지와 면 보자기를 깔고 펼친 꽃을 엎어서 가장자리부터 올린다. 다시 전원을 켠 상태에서 꽃이 따듯해지면 전원을 끄고 한 송이씩 나무 집게로 뒤집어가며 8~10분 덖은 뒤 10분 정도 식힘 과정을 갖는다. 두 번의 불 꺼짐 후 식힘 한 번을 하면 첫 번째 덖음인데 20분 정도 소요된다.

두 번째 덖음은 불 켜짐과 동시에 시작한다. 한 번 덖음에 소요 시간은 7~8분, 식힘은 10분 정도. 꽃차를 한 번 완성하기까지는 덖음과 식힘을 7~9번 진행하고 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지막 작업은 팬의 온도를 가장 높여서 20초 정도 빨리 덖음을 하고 식힘을 진행한다. 덖음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는지 확인하려면 피자 팬의 뚜껑을 덮어 수분이 올라오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다음 최저 온도에서 잠재우기를 3시간~하룻밤 정도 하면 되는데 이것을 향 매김이라고도 했다.

한쪽에서 동백꽃을 덖는 동안 다른 한쪽에선 생강나무꽃을 다루기 시작했다. 생강나무꽃을 다듬을 땐 3마디 정도의 끝 가지에 붙은 녹색의 꽃봉오리를 따서 끓는 물에 채반을 올리고 30초 정도 찐다.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70~80%의 자연 건조를 한 뒤 동백꽃과 마찬가지로 피자 팬에서 덖음과 식힘 과정을 반복했다. 생강나무꽃을 찔 때는 물 2L 기준으로 한 스푼 정도의 소금을 넣는다. 황 원장은 소금을 녹인 감초 달인 물을 넣었다. 이른 봄꽃의 경우, 소금만 사용해도 무방하다. 생강나무꽃차는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서 수족냉증, 산후조리, 신경통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꽃차가 비싼 이유는

팬지꽃도 이날 덖었는데 그 과정이 동백꽃이나 생강나무꽃보다는 한결 쉬웠다. 덖음과 식힘 과정은 다른 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갈변 여부를 잘 살피면서 나무 집게로 꽃잎을 하나씩 잘 뒤집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팬지꽃은 덖을 때부터도 화려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꽃 색깔마다 조금씩 다른 효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가래를 삭이며 항염(抗炎) 효과와 신경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봄바람을 담아 마시듯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차여서 그런지 형형색색의 팬지를 한꺼번에 넣고 우렸더니 엷은 그린색이 나왔다.

목련꽃은 꽃잎을 펼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손이 따뜻한 사람은 체온만으로도 색깔이 변할 수 있어서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민감한 꽃이었다. 하지만 덖음과 식힘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꾸들꾸들한 상태가 되어서 제대로 된 별 모양이 되어가면서 한층 근사한 맛과 향이 나는 꽃차로 변모되었다. 이 밖에 안색을 밝게 해 주고 피부 미용에 좋다는 도화차, 머리를 맑게 해주고 집중이 잘 돼 춘곤증에 좋다는 매화꽃차도 대표적인 봄꽃 차이다.

하지만 꽃이 바싹 마를 때까지 덖고 식히고 또다시 덖고 식히는 과정은 생각 밖의 노동이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만들 수 없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이기도 했다. 꽃차가 왜 비싼지도 알 것 같았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동백꽃 꽃차 만드는 과정
1 꽃봉오리 상태의 동백꽃을 준비 한다(재료).
2 꽃받침을 떼고 꽃잎을 한 장씩 펼친다(다듬기).
3 피자 팬 위에 창호지와 면 보자 기를 깔고 그 위에 꽃잎을 펼친 동백꽃을 올린 뒤 집게로 뒤집어 가면서 덖음과 식힘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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