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부합하는 法治 한국은 여전히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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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형사8부 판사실에 모여 일괄사퇴를 결의하고, 사표를 쓰고 있는 모습. 돌베개 제공

판사 앞에 앉아 본 사람은 안다. 죄와 책임의 유무·경중을 따지고 결정하는 그의 자리가 얼마나 드높은지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법에 호소할 때 그는 구원의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은 법에 의한 통치, 법치를 기조로 하는 민주사회를 '지향'한다. 권력자가 기호에 맞게 나라를 다스리려 할 때 들먹이는 법치가 아니라,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법치, 돈과 권력이 법을 집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법치다. 시민의 상식은 이렇다.

역사학자 한홍구의 글 모음

이승만 정부 이후 현재까지
사법부 '굴종' 역사 더듬어

1971년 1차 '사법파동' 등
내부 개혁 움직임 시선 끌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이행기이듯, 시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법치도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인 지은이가 신문 연재물을 묶어 펴낸 '사법부'는 한국의 사법부가 이승만 정부 이후 지금까지 어떤 굴종의 역사를 지나 왔는가를 뼈아프게 더듬는다. 지은이가 민간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2007년 10월 발간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중 제4권 '정치·사법 편' 중 사법 부분에 기초했다.

친일 경찰에 기대었던 이승만 정권,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를 통해 사법부를 좌지우지했던 박정희·전두환 정권. 사법부 스스로 권력을 지향하며 정권과 결탁하는 문민정부 이후.

정권 유지에 장애가 되는 인사와 정적들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검찰, 검찰과 손발을 맞춰 정권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잇달아 내렸던 법원. 억울하게 형을 살거나 심지어 사형을 받은 사람들의 사연은 수없이 많다.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법부 내부의 개혁 움직임이다. 한국의 사법부 역사에는 3차례의 '사법파동'이 기록돼 있다.
1차 사법파동 당시 서울고법 판사들이 민복기(왼쪽) 대법원장에게 대통령을 상대로 사법부 독립 약속을 받아야 한다며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하고 있다. 돌베개 제공
1차 사법파동은 1971년 대법원의 국가배상법 위헌 판결과, 서울형사지법의 시국사건에 대한 연 이은 무죄 판결 이후 일어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형사지법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등 3명에 대해 공안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표적이 된 이 부장판사는 유죄가 선고된 19건의 시국사건 항소심에 모조리 무죄 판결을 내렸던 강직한 인물이었다. 전국 법관 455명 중 153명이 사표를 던지며 강력히 항의했다. 대법원장 민복기는 신직수 법무장관이 "이번 사태를 깊이 반성하고 사법부 독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국회에서 발언하자 이를 정권 차원의 사법부 독립 보장 약속이라고 일선 법관의 항의를 무마시켰다. 형사 사건 피의자들의 미결 구금일수가 급증할 우려가 커지자 판사들은 하는 수 없이 일선으로 돌아가고, 1차 사법파동은 허무하게 마무리된다. 허망한 이 결말은 판사들의 저항 의지를 잃게 만들었고, 이범렬 홍성우 등 존경받던 판사들이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그 싹이 잘린다.

사법부
1988년 4월 13대 총선 직후 2차 사법파동이 일어난다. 전두환 정권 말 대법원장에 취임한 김용철을 노태우 정권이 유임시키려 하자 1천 명이 안 되던 판사 가운데 430여 명이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지 못하고 국민들은 국민들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 기본권을 쟁취해왔다. 민주화 열기의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아무런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심지어 매도하게 되었다. 사법부가 새로운 신뢰를 쌓아갈 발판을 마련하는 길은 사법부 수장 등 대법원의 면모를 일신함에 있다." 곡절 끝에 사법부 내 신망이 두터웠던 이일규 판사가 대법원장이 되었고, 그는 정권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약속받은 뒤에야 취임을 수락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물결 속에 사법부 내에서도 개혁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1993년 6월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은 '사법부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의견'이라는 문건에서 이렇게 밝힌다. "지난날 사법부의 비겁함을 꾸짖는 역사 앞에 참담한 심정으로 속죄한다. 과거사 반성과 청산 없이는 사법부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없다. 판사들은 판결로 말해야 했을 때 침묵하기도 했고, 판결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을 말하기도 했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 돌리기도 했다." 민변과 변협으로부터 정치판사 퇴진 요구가 거세어지자 전두환 정권 시절 서울형사지법에서 승승장구하고 대법관이 된 안우만 법원행정처장이 물러난다.

사법부의 권위를 갉아먹는 사람도, 드높이는 사람도 모두 내부에 있다. 엄혹하던 시절에도 사법 정의와 법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판사들의 기개가 법원 내부에 아직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진정한 법치를 바라는 시민과 사법부 내부의 목소리가 조응할 때 사법부는 물론 국가의 정의가 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한홍구 지음/돌베개/443쪽/2만 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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