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돌보던 교수, 고양이 급식소 '아빠'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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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첫 고양이 급식소의 운영자로 선정된 부경대 박진환 교수(왼쪽)와 동아리 '동반'의 김현수 회장이 길고양이 '하늘'이를 쓰다듬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지난 18일 부경대 용당캠퍼스 박진환(59) 공업화학과 교수의 연구실 문을 열자 개 짖는 소리부터 들렸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짱가'. 박 교수가 8년 전 데려와 키운 유기견이다. 그의 품에는 길고양이 '하늘'이가 안겨있었다. 박 교수가 7개월 전 아파트에서 발견한 길고양이 새끼다.

박 교수는 천안함 원형 보존을 위한 도장, 광안대교 부식 방지를 위한 도장에 참여한 국내 도장기술의 대가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박 교수는 어마어마한 경력보다 부경대 용당캠퍼스에 사는 길고양이 40여 마리의 '캣대디'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부경대 박진환 교수
동아리 '동반'과 함께
'야옹이 쉼터' 첫 운영자로

15년간 길고양이 돌봐
"함께 살아갈 생명 인식"


박 교수는 길고양이 먹이를 위해 휴일도 없이 학교에 출근하는데, 그의 차가 학교에 도착하면 7~8마리의 고양이가 호위하듯 달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고양이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서일까. 박 교수와 부경대 동아리 '동반(동물에게 반하다)'은 4월부터 운영될 부산 첫 고양이 급식소 '야옹이 쉼터' 운영자로 선정됐다.

부산시 동물보호 TF팀 김선자 팀장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이 사업을 지속하고, 주변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박 교수는 자신보다 동아리가 급식소 운영을 맡은 것에 만족감이 컸다. 박 교수는 "급식소 관리는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라 혼자 하기에는 몸도 마음이 힘들다"며 "동아리 회원 80여 명이 함께 하면 사업의 연속성과 일의 분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번 급식소 결정 이후 동아리 신입생 모집에 100명도 넘는 인원이 지원하기도 했다.

김현수 동아리 '동반' 회장은 "부산에서 처음 시행하는 급식소라 동물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관심이 큰 것 같다"며 "열정이 많은 친구가 모인 만큼 누구보다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15년 전 자신이 기르던 개 '찌찌'를 잃어버린 후부터 '캣대디'의 길로 들어섰다. 길고양이와의 동행은 쉽지 않았다.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민원을 넣기도 했다. 고양이가 발정기가 되면 내는 흡사 아기울음 같은 울음으로 수업이 방해되는 것, 배가 고픈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져 주변이 엉망이 되는 것이 주 원인이었다.

박 교수는 이번 급식소 운영이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급식소를 찾을 부경대 용당캠퍼스의 길고양이 40여 마리 중 90%는 이 달 말까지 중성화 수술을 완료해 발정기가 없다. 10년이 넘도록 매일 밥을 주는 터에 쓰레기통도 뒤지지 않는다.

박 교수는 "부산에서 처음 시작하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인간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양보한다면 길고양이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명임을 알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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