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흔든 한 권] 그냥 한 번 훑어보려다 쭉 읽게 되는 이상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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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자 / 김일두

부산 중구에 사는 뮤지션 김일두의 두 번째 산문집. 그냥 한 번 읽어보려다 여기까지 왔다. 그냥 한 번 쭉 훑어보려다 쭉 읽게 되는 이상한 책의 마법이랄까. 정말 김일두는 그의 수록곡 제목처럼 어쩔 수 없는 천재인가 하는 생각이 날 흔들었다.

'하지도 못하는 게 욕심만 많아 가지고…'라는 자전적인 것 같으면서도 독자들에게 던지는 듯한 서문으로 시작하는 글은 시시껄렁한 일상이 뒤죽박죽 엉켜있지만 결코 그냥 곱고 맑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김일두의 문장에 마구 뒤섞여 가며 이리저리 놀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다가도 문득 신께 기도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글은 경계를 자극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사물의 존재에서 세상의 존재를 통찰하는 듯 사랑스런 말들을 시부렁대다가 갑자기 마구 욕지거리를 퍼붓는가 하면, 세계 경제를 걱정하기도 한다. 산문 전체에 소주 맥주 양주 막걸리 담배가 자주 섞여 그런 것 같아 그를 측은하게 느끼기도 하다가 문득 내 자신을 걱정해 주는 듯한 은혜로운 마음의 글귀를 보면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분석하며 볼 책은 아니지만 살펴보자면 대충 맥락은 이러하다. 책 속의 주인공은 타자를 견제한다. 이내 타자를 억압한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을 견제한다. 자신에 대한 견제가 인간에 대한 관심이 되고 세상에 대한 걱정이 된다. 결국 사랑이다. 너무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포장하는 것 같지만 김일두는 백 마리의 양이 있어도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그 한 마리를 찾으러 갈 것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현대에 그는 부적격자다. 결국 술을 마시고 로큰롤을 해야 할 운명이고, 계속 경계에 서있어야 할 운명이 짓누르는 일상을 떠도는 여행자다.

'부적격자'는 한쪽만 읽으며 넘어가도 되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되고, 심지어 책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서 봐도 읽히는 책이다. 또한 삼십 분 만에 다 읽을 수도 있고, 삼십 일이 걸려도 못 읽을 책이기도 하다. 이상하고 신비롭고 고약한 놈을 따라 시간과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이 책읽기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부적격자를 따라다니는 경험이 어떠한 판타지보다 야릇할 것이다.

책이 삶을 흔들었다고 하면 김일두는 '병신 쪼다 같은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세상 어떠한 진지한 이야기보다 동네 형님의 이야기가 순간순간 내 삶을 더 흔들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여든여덟까지 살다가 이 책 한권 정도 가져가면 심심하지 않아 좋을 것 같다. 챕터 72는 빈 페이지로 되어 있다.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어떤 긍정의 메시지를 스스로 쓰라고 남겨둔 것도 같다. 하지만 난 저자의 실수라고 믿고 싶다. 그게 더 어울리니까.


이연승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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