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된 벚나무 '무더기 벌목' 물의
부산 서구청이 재해 예방을 이유로 수십 년 수령의 나무를 무더기로 베어 내 '땔감용'으로 처리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주민들은 정작 재해 예방이 시급한 곳이 아닌 대로변에 정비 사업을 진행해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서구청, 재해예방공사 빌미
꽃마을 길 100여 그루 싹둑
산기슭 따라 밑동 드러내
주민들 "80년대 방식" 성토
13일 오전 8시, 서구 서대신동 민방위교육장에서 꽃마을로를 따라 꽃마을 입구로 올라가자 왼편 산기슭을 따라 나무 100여 그루가 하얀 밑동을 드러내고 있었다. 잘려 나간 나무 밑동의 나이테를 세어 보니 수령이 족히 수십 년은 돼 보였다. 주변을 지나는 등산객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택시기사 김경문(63) 씨는 차에서 내려 "꽃마을과 내원정사를 가는 손님들마다 모두 혀를 끌끌 찬다. 다시 기르기도 힘든 수십 년 된 나무들을 마음대로 잘라 내는 건 1980년대에나 하던 일 아니냐"며 성토했다.
서구청은 1월 초부터 '꽃마을로 일원 재해예방공사'를 명목으로 전체 600여m의 낡은 석축을 걷어내고 이중 400m 구간의 소나무 11그루와 벚나무 105그루를 잘라냈다. 구청 측은 나무 뿌리 탓에 석축이 변형돼, 나무를 잘라낸 뒤 새로 석축을 쌓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사를 담당한 서구청 건설과 관계자는 "벚나무 수령이 40년이라 수령이 다 된 나무들만 벌목했다"고 말했다. 구청 측은 소나무를 파쇄하고, 나머지 100여 그루는 꽃마을 주민들에게 땔감용으로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벚나무 수령이 70년이며, 나무를 보존하면서도 얼마든지 재해 예방 공사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산 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사무처장은 "밑동을 자르기 전 옛 사진을 보면 작은 나무들이 벚나무를 받치고 있는 상태고, 옹벽 경사도 심하지 않기 때문에 석축을 덧쌓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3년 경기도에서는 위험한 옹벽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외부 옹벽을 한 겹 더 쌓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외에도 넝쿨 식물을 심거나 뿌리 식물을 재배하는 방법도 있다.
해당 구간에 재해 예방 공사가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 지역을 자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과 꽃마을 주민들은 현재 석축 공사 현장보다 20m 떨어져 있는 산책로가 더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5년째 구덕산을 오르내리고 있는 성지양(66) 씨는 "물길이 등산로 쪽으로 나 있는데, 장마철에 대비하려면 물길이 있는 곳을 정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현재 꽃마을로 배수로는 차도가 아닌 등산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이에 대해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들과 충분히 토의를 거치고 진행한 사업"이라고 해명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