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산책] 산하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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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정' 지아장커 감독이 그린 '현대 중국인의 민낯'

중국 6세대를 대표하는 지아장커 감독이 영화 '산하고인'을 통해 처음 멜로 드라마에 도전했다. 에스와이코마드 제공

첫 장편 '소무'(1997)부터 '세계'(2004), '스틸 라이프'(2006)를 거쳐 '천주정'(2013)에 이르기까지 지아장커의 영화들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10일 선보인 '산하고인'은 전작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새로운 빛깔들을 보여준다. 그 층층의 색들은 지아장커의 일관된 주제의식 및 스타일과 자유롭게 교류하고 또 분리되기도 하면서 한층 넓은 스펙트럼으로 영화의 시간을 꿰뚫어낸다. 멜로 드라마라는 외피로 인해 보다 말랑하고 온화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산하고인'은 산이 사라지고 강이 말라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시험하고 증명하기 위해 영화는 탄광마을 '펀양'에 사는 세 남녀의 과거 현재 미래를 펼쳐놓는다. 뉴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타오는 자신을 좋아하는 진솅과 리앙즈 중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경제력이 있는 진솅과 결혼한다. 그녀의 선택은 중요한 모멘텀이 되어 나비효과처럼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가는데, 거시사적 차원에서 이것은 그 시절 중국이 인식했던 자본에 대해 권력과 욕망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탄광마을 세 남녀의 이야기
과거·현재를 다른 비율로 촬영
전작보다 말랑해진 멜로 드라마

그리고 그 열망은 곧바로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웨딩 촬영 뒷배경으로 사용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화려한 풍경과 중국 미개발 지역의 어수선한 정경이 대비되고 나면, 타오는 출산을 하고 진솅은 아들의 이름을 '달러'로 짓는다. 다소 직설적일지라도 이 원초적인 작명은 감독이, 그리고 우리가 지내온 모든 시절을 그 어떤 저항 없이 통과해온 거대한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1.33:1의 비율로 촬영된 과거에 비해 1.85:1, 2.35:1의 화면비로 보여주는 현재와 미래는 시간이 가져다준 기술의 이기를 실감케 하지만 정작 그 화면 속의 인물들은 건조하고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진솅과 이혼한 타오는 암에 걸린 채 귀향한 리앙즈와 조우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렇게 아버지 세대가 종말을 맞이한 10년 후, 카메라는 호주에 살고 있는 '달러'의 실존적 방황으로 시선을 돌린다.

자신보다 부유한 진솅에게 아들을 맡겼던 타오의 두 번째 선택이 달러의 외로운 청년기를 조장했음을 암시하는 부분들은 흥미롭다. 펫샵보이즈의 '고 웨스트(Go West)'에 맞춰 춤을 추는 타오의 모습은 드물게 아름답고 강렬한 엔딩을 선사한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이미 많은 것을 성취한 감독에게 더 기대할 것이 있을까. 그러나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실감케 한다.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과 향수가 강한 의심과 불안 위로 아슬하게 비행하는 작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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