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원의 시네아트]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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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진 방 밖은 어떤 세상일까?' 실화보다 더 특별한 이야기

납치된 젊은 엄마 조이와 그의 다섯살된 아들 잭이 펼치는 감동 실화 '룸'의 한 장면. 콘텐츠게이트 제공

방이 있다. 방은 하나의 세계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데미안'의 새처럼 어쩌면 우리 삶은 그 방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가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별 것 없던 세계에 차츰 새로운 것들이 들어차고, 익숙한 것이 생기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잭(제이콥 트램블레이)은 태어나서 방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

엄마 조이(브리 라슨)는 열일곱 살에 납치돼 창고 같은 이 공간에 갇혀 7년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납치범 닉(숀 브리저스)이 제공하는 식사에 의존해 살아간다.

납치된 뒤 7년간 감금 당한 여자
오스트리아 실화 바탕 소설 원작
아카데미상 '브리 라슨'의 열연


이제 막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잭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조이는 탈출을 결심하고, 천신만고 끝에 결국 바깥 세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좁은 방이 아닌 진짜 세상은 조이가 바랐던 것처럼 따뜻하지만은 않다. 사람들의 편견과 섣부른 관심에 노출된 두 모자의 마음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는다.

에마 도노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룸'의 간략한 시놉시스를 접한 이들 중에는 충격적인 소재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지난 3일 선보인 '룸'은 몇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소년이 진짜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실제로 발생했던 오스트리아 밀실감금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의 변주를 거치며 순도 높은 이야기로 정제됐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미덕이자 가장 어여쁜 점은 자극적인 소재에 천착하지 않고, 사건 이면에 가려지기 쉬운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5년간의 감금 생활이라면 얼핏 끔찍해 보이지만 애초에 그곳에서 나고 자란 잭에겐 안정된 우주나 마찬가지다. 진정 불편한 상황, 그러니까 영화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방을 탈출해 세상 밖에 내던져졌을 때부터 시작된다.

급작스럽게 진짜 세계와 마주하게 된 잭이 두렵고 혼란스러운 만큼 사람들도 잭의 존재가 불편하고 어색하다.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순진무구한 아이의 시선을 빌려 공감 없는 섣부른 동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자신의 세상을 넓혀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새삼 되새긴다.

뉴스의 가십거리를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에게 이해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접근방식이다. 그 끝에서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잭과 조이의 관계는 비로소 평범해지고, 때문에 이 이야기는 실화(소재)보다 특별하다.

특히 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조차도 이변에 가까운 발견인데, 그에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제이콥 트램블레이의 존재감은 남루함으로 감춰보아도 가려지지 않는 보석마냥 영화 내내 빛난다. 노출증에 가까운 소재주의와 스펙터클에만 매달리는 최근 여러 영화들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 모름지기 이야기를 빌려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볼 때의 태도는 이래야 마땅하다. 




송경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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