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마저 장기결석시킬 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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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부산 동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1년 넘은 설득에도 A(17) 군이 등교를 안 하고 있다'는 학교의 신고였다.

즉시 현장을 방문한 경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A 군이 사는 연립주택은 방과 거실, 부엌 등 곳곳에 쓰레기와 오물이 널브러져 쓰레기장 수준이었다. 벽과 천장은 곰팡이로 뒤덮였고, 바닥에는 각종 배설물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개 4마리가 어지러이 뛰어다니는 속에서 A 군은 천연덕스럽게 휴대전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집 안은 대낮인데도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냉골이었다. A 군 어머니는 "요금이 밀려 도시가스가 끊긴 지 오래됐다"고 했다.

대구서 전학 온 17세 남학생
적응 못 해 1년째 등교 거부
경찰 설득에 검정고시 도전
"요리사 자격증도 딸래요"


5년 전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읜 A 군은 2014년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사 왔다.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서였지만, 친구 한 명 없는 낯선 동네에서 A 군은 시나브로 학교와 멀어졌다.

이듬해 중학교 3학년 과정까지 통째로 결석하며 A 군은 '학업유예' 상태가 됐다. 지난 15일 또래 친구들이 졸업장을 받을 때에도 A 군은 홀로 집을 지켰다. 졸업식 다음 날 교사와 사회복지사가 함께 A 군 집을 찾았고,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 112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의 현장조사 결과 우선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부터 바꾸는 게 시급했다. 여청계 직원들과 타격대 대원 등 10여 명이 동원돼 집 안을 대청소했고, 보건소 도움으로 소독까지 마쳤다. 동부경찰서 정규열 서장과 직원들은 십시일반 모금을 해 2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지난 22일 연체료를 납부해 도시가스가 연결됐고, 남은 돈으로 냉장고와 세탁기, 도배·장판도 지원할 예정이다.

경찰의 도움에 마음의 문을 연 A 군은 "학교는 가기 싫지만, 공부는 하고 싶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며칠 전 A 군은 1년여 만에 교과서를 다시 펼쳤다.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수업을 받으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8월 시험에 합격하면 고등학교 검정고시와 요리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다.

동부서 여청계는 일대일 멘토를 자처하며 A 군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상균 경장이 매일 5~6차례 통화를 하고, 수시로 집을 방문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김 경장은 "어린 나이에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우선 센터 교육부터 꾸준히 받게끔 곁에서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현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A 군 가정을 지탱하는 건 기초생활수급비와 어머니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몇 푼이 전부.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도 빠듯해 언제 다시 도시가스가 끊길지 모른다. 경찰은 A 군 어머니에 대한 전문가 상담과 임대주택 지원 등을 알아보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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