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건설사 열전] ㈜삼정기업 박정오 회장
"느리더라도 내실 다지며 한 발씩…"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 대출 이자가 38%까지 올랐다. 건설업계가 휘청했다. 줄도산이 계속됐다. 우리 역시 힘들었다. 손 떼고 도망칠 궁리까지 했다. 하지만 가족과 직원이 눈에 밟혔다. 어떻게든 해 보자 다짐했다. 벌었던 돈을 쏟아 부었고 몸을 더 굴렸다. 다행히 살아남았다. 행운이었다."
㈜삼정기업 박정오 회장은 IMF 때를 최대 시련기라 했다. 느리더라도 분수에 맞는 경영 철학도 그 무렵 습득했다.
1985년 주택건설업과 인연
그동안 주택 2만 세대 공급
직원 100명 중견사로 성장
저소득층 주거개선 사업 등
숱한 사회공헌 활동 유명
금탑산업훈장 영예 안기도
해서 삼정기업 행보는 더디다. 하나 짓고 입주 끝나면 또 하나 짓는 식이어서다. 내실 다지며 한발씩. 그게 삼정기업 성장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상근 직원 100명을 둔 부산 중견 건설사가 됐다.
주택건설업과 연을 맺은 건 1985년. ㈜삼정 이근철 회장과 동업으로 시작했다. 이 회장과는 7년 전 각자도생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공급한 주택은 2만 세대 안팎.
골치 아픈 땅에 뛰어들어 명품 단지로 만든 데가 꽤 된다.
김해 주촌선천지구가 그렇다. 민간이 개발하는 전국 최대급 도시개발사업을 부산 중견 건설사 3개 사와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김해 중심지인 주촌선천지구는 2005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나 7년간 진척이 없었다. 곡절이 많았다. 시공사 선정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발로 진행이 안 됐다. 그러다 2012년 삼정기업 참여로 속도가 붙었다. 삼정기업은 지난해 이 땅에 '김해 센텀 큐시티' 1차분 911세대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부산과 창원을 잇는 교통 요충지라는 입지 가치가 인정을 받은 셈.
충남 아산 '아산배방삼정 그린코아' 부지도 다르지 않다. 당초 A사가 2천 세대급 아파트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부도로 사업이 중단됐다. 땅이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다들 참여를 꺼렸다. 수십억 원대 유치권을 비롯한 소송이 10여 건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삼정기업은 땅을 낙찰받았다. 수익 낼 만한 땅이라 여겼단다. 그 판단과 결단은 맞아떨어졌다. 2012년 2천150세대를 완판 시켰다.
지난해 4천160세대를 공급한 삼정기업은 올해 물량을 조금 줄인다. 김해 주촌선천지구 '김해 센텀 큐시티' 2차분 2천61세대와 대구 수성구 만촌동 774세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896세대가 전부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책정할 방침이다. 요즘 부동산 시장 흐름을 감안한 조치다.
"지난해 청약 열풍은 투자층인 가수요가 한 배경이었다. 분양권이 로또로 인식돼 너도나도 몰렸다. 하지만 올 초부터 시장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주택건설사도 거품 뺀 분양에 나서야 한다." 박 회장은 2011년부터 6년째 대한주택건설협회 부산시회장을 맡고 있다.
삼정기업은 사회공헌에 공을 들인다. 지난해 12월 부산 동구 범일동에 문을 연 '루미네 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독일인 루미네 수녀를 기리는 시설이다. 부산시와 동구청이 2014년부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예산이 벅찼다. 이때 삼정기업이 나섰다. 기념관과 조경, 광장까지 도맡았다. 불교신자인 박 회장이 수녀 기념관 건립에 앞장선 미담이 부산 지역사회에 회자됐다.
해외 유출 문화재 '범어사 칠성도' 환수도 마찬가지다. '범어사 칠성도'는 1950~1960년대 국외로 유출된 조선후기 불화다. 행방이 묘연하다 지난해 6월 스위스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경매 낙찰 비용을 삼정기업이 전액 부담했다.
지난해 9월엔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청년희망펀드'에 1억 원을 기부했다. 부산 1호였다. 옛날엔 큰 공장이 먹여 살렸지만 앞으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청년 창업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금정구 무료 급식 봉사를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저소득층 불량주택 수리와 국가유공자 주거 개선 사업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해엔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강서구청에 아파트 1세대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활동이 지난해 말 '금탑산업훈장' 수상으로 이어졌다. 2015년 주택건설의 날에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수여한 최고 영예였다. 부산 주택건설업계에선 두 번째다. 20년 전 동원개발 장복만 회장이 받았다.
중장기 목표를 물었다. 소형주택 공급이란다. 거창한 답변을 기대했던 질문이 무색하다. "무주택자가 집을 가지는 일에 동참하는 건 우리의 보람이다. 주택사업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고."
동래구 온천동 삼정기업 본사 사무실은 온통 꽃밭이다. 금탑산업훈장 축하 꽃화분으로 꽃내음이 그득하다.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