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이 되는 법] 내 손으로 만든 차 타고 더 넓은 세상 누비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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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일주를 꿈꾸는 정말석(가운데) 씨가 이웃사촌 김정부(맨 오른쪽), 이칠군 씨와 함께 '캠핑카'를 만들고 있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잔디깎이를 타고 여행한 한 노인의 이야기다. 73세의 이 노인은 오래 사이가 좋지 않던 형이 위독하다고 하자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미국 아이오와에서 위스콘신까지 500㎞가 넘는 길을 6주 동안 여행했다.

영화 속 노인처럼 누구는 경운기를 타고, 어떤 이는 트랙터를 타고 여행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걸어서 여행한다. 수단이 무엇이든 모두 '지구별을 여행하는 아름다운 보헤미안'이다. 독특한 여행을 위해 '나만의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려는, 여행하는 이들을 만났다.

귀촌한 목수 정말석 씨
전국일주 꿈꾸며 캠핑카 만들기

퇴직한 공무원 황영식 씨
개조 캠핑카 타고 낚시 '삼매경'

지맥 산행하는 김태영 씨
먹고 자고 기록까지 차에서 해결

■나이 팔십에 꾸는 좋은 꿈


정말석(80) 씨가 한참 만에 나왔다. 경남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 자신이 직접 지은 촌집에서이다. 구들이 있는 따뜻한 안방에서 친구와 얘기하느라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했다. 정 씨는 8년 전 부산에서 이곳으로 귀촌했다.

정 씨의 원래 직업은 목수였다. 장롱이나 탁자도 만들고, 인테리어를 하거나 집을 짓기도 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차량을 캠핑카로 고쳐서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을 보았다. 손이 근질거렸다. 저 정도는 자기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이런 캠핑카를 만들어 파는 곳에 물어보았다. 부산의 한 업체에서는 3천500만 원을 불렀다. 놀라 자빠질 뻔했다. 직접 만들기로 했다. 농사 지을 때 쓰라며 차는 큰아들이 선뜻 사 주었다. 그 적재함에 알맞은 작은 캠핑용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농사할 때는 여행 장비를 내려놓아야 하니 바퀴를 달았다.

"내비게이션이 관광지 어디든 데려다주니까 차를 타고 다니면 비용도 적게 들고, 좋지 않겠어!" 정 씨가 이웃 친구 김정부(73) 씨에게 뻔한 질문을 했다. 이곳 토박이 이칠군(68) 씨는 "형님, 저도 데리고 가 주실 거죠" 하며 미리 찜을 했다.

밑바닥은 거의 완성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한 달 안에 '공사'를 마무리 지을 작정이다. 예산은 150만 원. 용접기부터 톱, 대패까지 소형 캠핑 공간을 만들 도구는 모두 창고에 있다.

인근 남지, 창녕, 영산 장이 번갈아 서지만 정 씨는 잘 나가지 않는다. "장에 가면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돈을 많이 써." 작은며느리가 매달 적지 않은 용돈을 부쳐 주지만 아껴야 한다.

"동해안부터 서해, 남해로 한 바퀴 돌 테야 ." 정 씨의 새해 꿈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준비된 자만 누리는 섬 기행

루어 낚시인 황영식 씨는 최고의 취미인 낚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승합차를 나만의 공간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승합차 3밴은 화물칸 길이가 237㎝, 5밴은 180㎝입니다. 저는 키가 180㎝이라 3밴을 사야 했습니다." 황영식(63) 씨는 부산시 공무원으로 2년 전 퇴직한 루어 낚시꾼이다. 황 씨가 승합차의 구조에 이렇게 해박한 것은 자신의 꿈 덕분이다.

정년 1년 전부터 황 씨는 퇴직 후 뭘 할 것인가 고민하고, 준비했다. 평생의 취미인 낚시에 좀 더 매진하기로 한 것. 처음 10년은 많이 잡으려 욕심을 부렸고 20년째는 대물을 잡으려 애썼다. 30년쯤 되니 계절별 어종을 즐기게 되었고, 40년 차인 지금은 편한 낚시를 한다. 그래서 승합차를 샀다. 최장 일주일 치의 비상 식량과, 이불, 군용 매트리스, 가스버너와 전기장판, 비상용 배터리, 영하 18도가 유지되는 차량용 냉장고가 있다. 물론 접이식 의자와 탁자도 있다.

"요리도 배웠어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죠." 자격증은 차량 조수석 앞자리에 붙여 놓았다. "동행에게 경고하는 거죠. 내가 해 준 음식이 맛없더라도 딴소리 마라. '나 한식조리사야!' 라고요."

여분의 배터리로 전기장판도 켜고, LED 등도 밝힌다. 영 추우면 온수를 통에 담아 품는다. 팬티 차림이어도 춥지 않다. 아침에 그 물로 세수하니 일거양득이다.

황 씨의 '자작 캠핑카'는 낚시라는 취미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포인트를 이동하는 루어 낚시의 특성상 차는 필수인 데다 쪽잠이라도 자기 위해서는 안락한 잠자리가 필요했다는 것. 특히 요즘 섬마을에도 여행객이 많고, 성수기엔 민박도 비싸 엄두를 못 내니 '캠핑카'가 딱 맞는다.

일주일에 3일은 탁구, 1일은 골프로 체력을 보강해 3일 낚시를 즐기는 황 씨는 "광적인 취미가 있어야 퇴직 후가 즐겁다"고 행복해했다.

■현대판 '김정호'의 국토 사랑
백두대간에서 정맥이 뻗어 나왔고, 정맥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지맥이다. 일찌감치 1대간 9정맥 종주를 끝내고 지맥 산행을 즐기는 부산 산악인 김태영(72) 씨는 1년에 360일 정도는 산에서 산다. 김 씨의 산행 친구이자 '신산경표'를 쓴 산악인 박성태 씨가 정리한 남한의 지맥은 모두 157개. 지맥의 길이는 짧게는 30㎞부터 길게는 180㎞다.

김 씨는 박성태 씨와 지맥 산행을 90회 정도 같이 했다. 박성태 씨가 긋고, 김 씨와 함께 걸으며 그 길을 검증한 것이다. 이후 김 씨가 건건산악회 회장을 맡으면서 바빠 동행하지 못했다. 그 사이 '신산경표'는 책으로 나왔고, 김 씨는 못다 한 지맥 산행을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했다. 걷다가 더러 길이 바뀌었거나 지형이 변형된 곳은 박 씨에게 알려준다.
남한 157개의 지맥을 완주하려는 산악인 김태영 씨는 승합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장기 산행을 즐긴다.
한 번 산에 가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머무는 '장박'이 필수. 차에서 먹고 자고, 휴대폰을 충전하고, 카페에 산행기를 올린다. 올라운드 플레이가 가능한 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단다.

"비상용 배터리는 필수. 침낭 하나만 펴면 집보다 편합니다." 김 씨의 차는 스타렉스 5인승이다. 아내가 친구들과 더러 외출도 하기에 5인승을 샀다. 김 씨는 차에 운동기구도 싣고 다니며 틈틈이 체력을 보강한다.

한북정맥에서 지맥 산행을 하다가 민통선에서 검문에 걸려 군용 트럭을 타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오지에 갇혔다가 동네 사람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탈출하기도 했다. 하루 20㎞를 걷는데 오전 5시에는 일어난다. 등산로가 없는 곳도 많아 가시덤불에 갇혀 한 시간에 200m도 못 갈 때도 있다. 멧돼지와 만나 10분을 대치하며 긴장 속에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도 차 덕분에 올 상반기에는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단다.

"산 생활을 하니 옷도 좋아야 하겠더라고. 난 외제만 입어." 기자가 뚱한 표정을 지으니 "시장에서 8천 원짜리 중국산만 사 입어요. 안 그러면 감당이 안 돼"하고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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