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팔려 갔던 노숙인, 선주 등 상대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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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서 노숙인들을 꾀어 전라도 지역 섬에 선원으로 팔아넘긴 불법 브로커가 구속(본보 2015년 6월 1일 자 1면 등 보도)된 이후 임금 착취와 폭행 등에 시달렸던 피해 노숙인들이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중 한 노숙인이 시민단체 지원을 받아 선주와 불법 브로커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키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꽃게잡이 배 탔던 30대
브로커 구속 소식에 돌아와
"3년 넘게 일, 빚만 48만 원"
민·형사 소송 결과 주목


김 모(31) 씨는 전남 영광군 낙월도에서 지난 1월 부산역으로 돌아왔다. 그가 일한 기간은 모두 3년 9개월.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빚 48만 원뿐이다. 김 씨는 실직노숙인조합과 함께 선주와 불법 브로커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동안 부산역 피해 노숙인들은 소송 진행과정이 너무 어렵고 착취 현장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만족해 별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 결과가 불법 브로커와 선주들의 법적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씨는 2012년 4월 불법 브로커 한 모(56) 씨의 꾐에 넘어가 전남 영광군 낙월도에서 꽃게잡이 배를 탔다.

한 씨로부터 계약금 300만 원, 선주로부터 담요 속옷 옷 장갑 등 소위 '시꾸미'를 받았다. 하지만 이게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12년 12월 격무를 견디다 못해 배에서 내리겠다며 월급 정산을 요구했지만 "빚이 남았다"는 얘기와 함께 근로계약을 연장당한 것이다.

이후 폭언과 폭행이 이어졌고 근무 중 부러진 앞니 2개의 치료비도 모두 500만 원의 빚으로 처리됐다. 일하면서 제공되는 '시꾸미'는 계속 늘었고 모두 빚으로 쌓였다. 그렇게 3번의 근로계약이 연장됐다.

폭언·폭행에 저항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선원 일 말고도 김장, 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은 하루 4시간을 넘지 못했다.

김 씨는 "선주의 지인들이 가득한 섬에서 선주의 허락 없이 섬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폭행까지 당해 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선장과 몇몇 선원들이 옆에만 와도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김 씨는 이때의 충격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실직노숙인조합의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김 씨는 자신을 소개한 한 씨가 검거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 씨는 이를 계기로 선주에게 정산을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빚은 여전히 48만 원이었다. 김 씨는 일단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선주에게 "그냥 차비나 달라"고 요구해 겨우 부산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호준 실직노숙인조합위원장은 "국내 선원의 기본급은 최소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인데 이 같은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며 "조합 차원에서 대응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 노숙인이 자립할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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