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감정노동자 특수건강검진 제도화해야
/김준연 동아대 명예교수 대한산업보건협회 부회장
감정노동과 관련된 사회적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모 백화점 점원이 고객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한 사건, 예순이 넘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한 입주민 사건,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소위 땅콩 회항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감정노동은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1983년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배우가 연기하듯 타인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이다.
산업 고도화와 서비스업 증가로 감정노동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국내 감정노동자 수는 조사결과에 따라 600만~1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45%가 감정노동자에 달한다.
감정노동은 회사원, 버스·택시 운전사, 경찰, 교도관, 군인, 보육교사, 미용사, 간호사, 통신서비스 ·이동통신기 판매원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수행되고 있다.
감정노동자들은 강한 인내심을 요구 받는다. 동일작업을 반복하면서 장시간 일정한 공간에서 긴장된 상태로 서서 작업하는 경향이 높아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심하다.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울증, 자살 충동,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 등 정신건강 문제와 암, 심혈관계 질환, 소화기·근골격계 질환 등 신체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이뿐만 아니라 흡연, 음주, 도박, 알코올중독과 같은 습관성 건강위해 행위와 조직·직장동료와의 관계 악화, 조직몰입 감소, 직무만족도 저하를 비롯한 사회적 활동장해를 일으킨다.
2012년 국내 모 통신사 고객센터 상담원이 고객의 '갑질' 행위와 관련해 우울증 발생 혹은 악화로 자살을 시도한 사건의 소송에서, 그 회사가 직원보호의무사항을 위반했다고 해서 법원으로부터 1심 원고 승소판결(위자료 지급)을 받았다. 이 사례처럼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 관련 건강 문제는 이미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통념화됐다. 감정노동은 범사회적 문제로서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감정노동자 보호와 관련해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즉 사업주들이 '고객 응대 매뉴얼'을 반드시 갖추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매뉴얼에는 근로자가 고객 응대 과정에서 폭언, 폭력을 당할 때 고객 응대를 거부하거나, 고객 행위가 지나치게 심할 때 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고객의 폭언, 폭력 등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직무로 전환할 수 있다. 고객 응대 노동자를 위한 스트레스 예방교육도 의무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부 안(案)에 당연히 포함해야 할 감정노동자들의 구체적인 건강관리 방안이 제시돼 있지 않다. 이를테면 2014년부터 국내 야간작업근로자의 질병 예방을 위해 야간근로자 특수건강검진제도를 시행하는 것처럼 감정노동자의 특수건강검진 실시를 제도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측정, 정신건강 관리 등 체계적인 건강검진제도를 마련해 사전예방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감정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책임과 노력으로 해결된다. 사업주는 감정노동자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근무환경 여건 조성과 그에 맞는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도 상대방 말 경청, 긍정적 태도 갖기,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 등 감정의 자기조절 기능을 효율화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