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눈물겨운 생존 경쟁'] 365일 문 열고… 의뢰인 찾아 공단지역에 사무실 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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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타운'에서 한참 떨어진 부산 중구 남포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한창헌 변호사가 21일 오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변호사는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이미 갑이 아니라 을이 됐다."

부산 중견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단언했다.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성공가도가 열리던 시절은 끝났다. 성인 인구 1천 명당 변호사 1명 시대. 살아남기 위한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성인 1천 명당 변호사 1명
의뢰인과 관계서 '을' 변신
공휴일에도 전화상담 받고
서면·해운대 등 '탈법조타운'

수임 '빈익빈 부익부' 심화
신규 일부 실무수습도 못 해

■앉아서 사건 기다리는 시대 끝났다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으로 향하는 대로변에서 남포문고 맞은편으로 '365변호사사무소'의 간판이 보인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2기 한창헌 변호사가 동기 변호사와 함께 '법조타운'에서 한참 먼 이곳에 사무실을 연 것이 2013년 11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평일은 물론이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도 연중무휴로 전화 상담을 한다는 공지문이 보인다.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문구는 '2년 연속 사건 수임 많은 특정변호사'다. 대한변협 법조윤리위원회가 매년 눈에 띄게 사건 수임이 많은 변호사를 골라 브로커처럼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임을 하는 건 아닌지 점검하는데, 여기에 2년 연속 선정됐다는 의미다.

부산변호사회에 따르면 '잘나간다'는 변호사가 한 달에 10여 건 수임하는데,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그 이상을 해서 현장에 가봤더니 젊은 변호사들이 전투적으로 뛰고 있더란다.

한창헌 변호사는 "고객 따라 수임료를 재지 않고 늘 적정한 금액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하다 보니 입소문을 통해 의뢰인이 늘어났고, 국선변호인을 하면서 경찰서, 교도소도 뛰어다니다 보니 전관 출신이 없는 데도 형사사건을 많이 수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혼 사건을 전문으로 홍보하며 여성 유동인구가 많은 서면으로 간 변호사도 있다.

역시 로스쿨 2기 이인수 변호사가 꼭 1년 전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맞은편에 개업한 '법률사무소 유화'다. 이 변호사는 "인터넷에서 이혼 사건을 검색하거나 여성 변호사를 찾아오신 여성 의뢰인이 대부분"이라며 "원목을 써서 아늑한 분위기로 연출한 인테리어도 여성 의뢰인들이 특히 편안해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의 '법조타운 이탈'은 아직 시동을 거는 단계다. 2013년 말에는 부산변호사회 회원 500명 중 444명(89%)이 법원이 있는 연제구에 있었는데, 2016년 1월 현재 연제구의 비중은 656명 중 568명(86%)으로 다소 줄었다. 나머지는 동부지원이 있는 해운대구(31명)와 부산진구(11명), 서구(9명), 남구(7명) 순이다. 기타 지역에 있는 변호사는 2년 만에 7명에서 20명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내년에 강서구에 개원하는 서부지원 시대를 준비하거나, 공단 지역으로 가거나, 공공기관이 이전한 해운대 센텀시티 지역에 사무실을 내는 변호사도 속속 생기고 있다. 인터넷으로 전문 분야를 검색해서 찾아가는 의뢰인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이 법원 앞에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변호사들이 편하자는 것"이라며 "시대가 변했으니 변호사들이 수요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출발선에도 못 서는 신규 변호사들

그러나 새로운 도전과 성공이 허용되는 변호사들은 극소수다. 대부분 새내기 변호사들은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한 해 1천500명씩 쏟아져 나오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대형 로펌 위주로 사건이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것도 문제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신규 변호사들이 홈페이지에 경력을 과장해 홍보하는 경우도 생긴다.

부산변호사회 정필승 홍보이사는 "회원 주소 변경 신고를 보면 자택 아파트 주소를 적어내는 회원들이 보인다"며 "사무실 비용이 부담돼 재택근무를 하는 변호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역의 경우 취업이 안 돼 집 주소를 임시로 적어내는 분들이 아닐까 한다"라고 말했다.

업계는 국선변호인에 기존 변호사들조차 몰리는 것도 한 달에 국선변호 서너 건만 맡으면 사무실 비용 정도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규 변호사는 취업은 고사하고 법정에 서기 위한 실무수습 기회조차도 잡기가 쉽지 않다. 한 중견 법조인은 "로스쿨 교수들이 예전에는 인맥을 통해 제자 채용을 부탁했는데, 이제는 6개월 실무수습이라도 받아 달라고 부탁하고, 변호사들은 월 100만 원가량 주던 실무수습비조차 부담스러워 무급으로 돌리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규 법조인들이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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