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골목 나이는 100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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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 100년 길' 중 하나인 동구 초량동 초량육거리 인근 골목길. 김경현 기자 view@

부산 대표 원도심인 동구 초량동에서 '100년 전 옛길' 수십 개가 발견됐다. 부산의 특정지역에서 정확한 형태의 옛길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원도심 재생의 새로운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7일 오후 초량육거리 인근 한 골목길. 20m쯤 들어가자 일식 가옥 담장을 따라 샛길이 나타난다. 너비 1.2m에 불과한 좁다란 길이지만, 과거에는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30m 남짓 이어진 붉은 벽돌 담장에는 연도와 이름 등을 새긴 각종 낙서가 보인다. 부산대 건축학과 우신구 교수는 "일정한 간격으로 담장을 받치는 사선 형태의 부축벽 등 당대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단체 '초량 1925'
초량 옛길 수십 개 첫 발견
원도심 재생 시너지 기대


인근 초량2치안센터 앞. 정자 바로 옆 대각선 방향으로 골목길이 나타난다. 골목 곳곳에선 100년 전 '대로'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이 발견된다. 쌀집, 방앗간, 세탁소 등 생계와 밀접한 가게들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

특히 이 길에는 풍부한 '옛 소리'도 남아 있다. 입구 정자에선 어르신들의 장기 두는 소리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백발노인의 칼 가는 소리가 골목길 가득 울려 퍼진다. 사운드 설치미술가 정만영 작가는 "공간이 품은 다양한 소리를 통해 옛 지형과 생활의 변화상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100년 옛길'은 문화예술단체 '초량 1925'가 최근 6개월 동안 현장조사를 벌여 찾아냈다. '초량 1925'는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초량동 일대 옛 공간과 소리를 탐구해왔고 최근 연구 결과를 내놨다. 공간 연구를 담당한 우 교수팀은 1914년 지적원도와 2015년 수치지형도를 비교해 실핏줄처럼 남아 있는 옛길을 확인한 뒤, 일일이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1.2m 골목길'처럼 오랫동안 잊힌, 크고 작은 옛길 40여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옛 초량역과 부산역 사이 중앙대로 229번길도 눈길을 끈다. 여관·여인숙 등 숙박시설이 20여 개나 남아 있어, 과거 서울의 '피맛골'과 유사한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현장을 둘러본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향후 지역 재생 정책의 참고자료로 활용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초량동 일대는 광범위한 개발이 추진 중이어서 이번에 발견된 옛길 중 상당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우 교수는 "그동안의 원도심 스토리텔링은 옛 건축물과 인물 위주였는데, 옛길을 연결해 선과 면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면 원도심 재생의 새로운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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