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산책] 한 말씀만 하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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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언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엄숙한 미사 막바지, 예수님의 성체를 받기 직전 천주교 신자들은 입을 모아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외친다. 복음서에 나오는 백인대장의 호소를 패러디한 전례인데, 이때 '한 말씀'은 잔소리 길게 말고 짤막하게 하라는 불경한 부탁은 물론 아닐 테고, 불쌍한 우리 인간의 고통을 씻어 줄, 권위 있고 자비에 가득 찬 생명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들려주십사 하는 간절한 기구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삶의 진리를 갈구하는 중생들더러 "무상(無常)이니라"라고 외마디 법륜을 굴리셨다. 또 '법구경'을 통해 "천 마디를 줄줄 외우더라도/올바르지 않은 말이라면/깨달은 이의 한 말씀 들어/마음 잘 다스리느니만 못하니라"고 타이르셨다. 이 판에 공자님이 어찌 빠질까. 제자 자공이 "평생 행할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나이까?" 하고 묻자 "서(恕)다!"라고 딱 한 말씀 사자후(獅子吼)를 토하셨다.

진실로 성인 세 분이 발하신 한 말씀은 인류가 그리로 영원무궁 항행할 지표이자 등대로서, 오랜 사색과 고뇌에서 우러나온 활인(活人)의 도규(刀圭)이다. 히브리 사막에 맺은 기름진 올리브 열매이고, 보리수 아래 피어난 한 송이 연꽃이며, 행단(杏壇)에 솟은 단아한 은행잎이라 할 만하다. 어리석은 자들도 쉽게 깨칠 수 있게 요령 있게 요약한 촌철살인(寸鐵殺人), 단도직입(單刀直入)의 표현에, 말 한마디가 일언천금(一言千金)이요 일언구정(一言九鼎)의 무게를 지녔기에, 그 말씀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이른바 일언흥방(一言興邦)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무릇 인문에 뜻을 둔 학도라면 세 분의 수사학을 마음에 아로새겨 남 앞에 설 때 한 낱말 한 문장을 고음(苦吟)해야 마땅하리라.

정초 각종 모임서 인사말 난무
한 말씀이 두 말씀…무한말씀으로
행이불언의 교훈 깊이 새겨야


바야흐로 '한 말씀'의 계절이 도래했다. 정초가 되면 이 겨레와 이 동포는 어찌 그리도 결심하고 뭉칠 일이 많은지 누구라 할 것 없이 두세 번은 이런저런 모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참석하게 된다. 길고 긴 개회사가 끝나고 지루한 내빈 소개와 하나 마나 한 경과보고가 끝나고 나면, 으레 사회자가 단상에 버티고 앉아 계신 분들에게 축사나 당부의 한 말씀을 부탁하는 게 상례다. 처음엔 "어허, 제가 무슨!" 하고 사양하다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낙동강 물줄기처럼 도도하게 말씀을 쏟아내는데 만약 안 시켰으면 뒤에 두고두고 욕을 들을 판이다. 그들의 축사는 대부분 엄청 부풀린 형용사와 부사로 장식되는 가운데, 한 말씀이 두 말씀 되고 급기야 무한말씀까지 이어지면서 중언부언에 지리멸렬을 거쳐 오리무중이 되었다가 결국 일언망국(一言亡國)으로 치닫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여신이 침묵한 가운데 술 취한 디오니소스가 날뛰는 꼴이니 이래서는 청중들이 맘속으로 "제발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죽겠나이다"라고 외칠 것이 명약관화하다. 장광설로 악명 높던 네로의 스승 키케로가 연설이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간결성이 생명이라 했던 타이름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이 들수록,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말을 아끼라 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어리석은 자는 부질없이 지껄이다가 저도 몰래 망한다"고 충고했으며, "속이 깊은 이는 알고도 모른 척하지만, 미련퉁이는 그저 어리석은 소리를 떠들어댄다"고 개탄했다. 제갈량이 '출사표'에서 했던 충고대로, 엉터리 비유나 뜻 모를 사자성어로 사람들을 오도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혹시 누가 어느 자리에서 한 말씀 부탁하거든 묵묵히 일어서서 한 번 씩 웃고 "여러분! 사랑해요" 하고 도로 앉는 게 어떨까. 하품을 억지로 참고 있는 청중들에게는 천상의 복음이며, 그야말로 도연명의 서재에 놓인 무현(無絃)의 소금(素琴)에서 울려 나오는 가락 없는 절창이요, 태산 같은 인품에서 우러나온 행이불언(行而不言)의 교훈이라 만장의 갈채를 한 몸에 받으실 수 있으리라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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