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채소 그라탱 사계절 샐러드 그리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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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식당 인디고 서원 '에코토피아'

인디고 서원이 운영하는 대안 식당 에코토피아에 모인 사람들이 '영화관 옆 심야식당'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한 주 전에 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빵 '캄파뉴'를 직접 만들어 보고 있다. 인디고 서원 제공

식당 안으로 인문학이 들어왔다. 요리와 인문학이 만났다. 식당에서 밥만 먹고,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영화도 보고, 빵도 굽고, 요리도 하고, 강연도 듣고, 제법 의미 있는 수다도 떤다. '사람 사는 재미'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게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식당이라는 공간도 인문학을 펼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학원가 골목에 자리 잡은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알려져 있다. 인디고 서원에서 운영하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인근 건물 여기저기를 네 번씩이나 옮겨 다니던 대안 식당 '에코토피아'가 인디고 서원 뒷마당의 낡은 주택 한 채를 수리하면서 정착했다. 거기선 카레·어린잎 두부 비빔밥·두부 스테이크·채소 그라탱·채식 감자라면·사계절 샐러드 등 건강한 밥상도 만들어 팔지만, 친환경적으로 재배되고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와 차, 디저트도 먹을 수 있으면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동시에 진행해 관심을 끌고 있다.

작은 혁명가를 위한 꿈꾸는 식당

에코토피아가 처음 만들어진 건 지금으로부터 9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7년. 생태·환경 분야의 책을 읽으며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실천을 고민하던 인디고 아이들이 직접 이름을 짓고, 기획했다. 채식을 표방하면서, 제철 음식, 로컬 푸드,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이웃 나눔을 실천하는 식당, 네팔의 지진 피해자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수익금을 쓰는 '착한' 식당이 되고자 노력했다. 올해는 이에 더해 인디고 서원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의미에서 '문화·예술·교육 공간'이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중이다.

지난달 중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영혼의 정원을 가꾸는 아침'(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총 8회)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에코토피아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어른이자 부모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나누고, 인문적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강의를 듣는다. 뒤이어 '영화관 옆 심야식당'(매주 목·금요일 오후 7시~9시 30분·요일별 8회)이 가동됐다. '영화관 옆 심야식당' 프로그램은 애초 금요일 1개 반만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수강 신청자가 많아 2개 반으로 늘려서 출발했다. 

인디고 서원이 운영하는 대안 식당 에코토피아에 모인 사람들이 '영화관 옆 심야식당'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한 주 전에 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빵 '캄파뉴'를 직접 만들어 보고 있다.        인디고 서원 제공
영화 보고 빵 만들고 요리하기

두 번의 '영화관 옆 심야식당' 강의를 청강했다. 목요일 반에는 엄마와 함께 신청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있었고, 금요일 반에는 항만 계통 회사에 근무한다는 '청일점' 남성 수강생이 포함됐다. 올봄 대학생이 되는 고3 여고생 딸과 등록한 어머니도 있었고, 홈 스쿨러 출신의 수능 준비생, 여대생, 전업주부, 공무원 등 저마다 다양한 이력을 내보였다.

1주 차엔 다 같이 영화 한 편을 보고, 2주 차엔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을 만들었다. 맨 먼저 선택된 영화는 일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피 해피 브레드'. 맛있는 빵과 요리를 통해 손님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내용인데, '행복'을 키워드로 영화 본 느낌을 나눴다. 이후 영화 속에 나오는, 소박하지만 투박한 빵 '캄파뉴'를 직접 만들었다.

7일과 8일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과 '치유' 이야기. 한 주 뒤에는 기억을 담은 치유의 과자로써 마들렌을 만들게 된다. 또 21일과 22일엔 영화 '라따뚜이'를 보고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다음 주에는 마음의 안식을 주는 채소 스튜를 만들기로 했다. 2월 4일과 5일 마지막 영화는 '희망'을 키워드로 한 '포레스트 검프'. 이후 사랑을 전하는 초콜릿을 만들어서 선물 상자에 담으면 8주간의 강의는 마무리된다.

에코토피아 김수연 매니저는 "좋은 음식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듯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상의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박의 스위치 잠시라도 끄고 싶었다!

참가자들의 소감도 각각 달랐지만 "일상의 강박으로부터 잠깐이라도 스위치를 꺼 두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는 스물두 살 강민경 씨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구청에 다닌다는 금소정 씨는 "온종일 직장 근무에 피곤할 법도 한데 힐링하는 시간이었다"고 즐거워했다. 40대 전업주부 최경아 씨는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센터 요리교실도 다녀 봤지만 거기선 왠지 공허함이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여기선 음식과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청일점 김기봉 씨는 에코토피아에서 직접 만든 빵 '캄파뉴'를 품에 안고 "이유 없이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인디고 서원 허아람 대표는 "인문학 서적은 어떤 때는 하루에 한 권도 팔리지 않는데 에코토피아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난 뒤, 식당에 온 손님이 책까지 구입하는 걸 보고 새삼 기뻤다"고 말한 뒤 본인도 멋쩍은지 그저 웃었다. 에코토피아는 그룹 스터디 예약도 가능하다. 문의 051-628-2897.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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